사법시험
사법시험
  • 전주일보
  • 승인 2017.06.26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법시험은 '개천의 용(龍)'을 탄생시키는 관문에 비견됐다. 요즘의 언어로 치면 '흙수저'들의 희망 사다리라 할만 했다. 가진 것도 빽도 있을리 없는 출신들에게 합격만 하면 신분이 달라지고 부와 권세가 보장되는 단단한 줄이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수험생들의 질끈 동여맨 머리띠에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대망'을 품어라)'라 쓰인 문구의 '대망'이기도 했다. 헌법, 민법, 형법 등 기본 3법에 소송법(민사, 형사)과 상법, 선택과목, 영어(TOEIC등으로 대체). 권당 1천여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난해한 법률서적 수십여권의 회독(回讀)에 더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판례 숙지까지. 그것을 향한 학습은 그 자체로 지난한 고행의 길이었다. 시골이든 도시든 학창 시절 공부 좀 한 덕에 '수재'소리를 듣던 학생들에게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그 공부의 권유가 이어졌다. 시골 출신 가난한 고학생이 퀴퀴한 냄새나는 손바닥만한 하숙방 혹은 자취방에서 수년간 각고 끝에 눈물의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주요 뉴스거리였다. 그 시기 숱한 '성공 신화'의 한 축을 담당한 바도 있다. 없는 살림 쪼개고 허리띠 졸라매가며 뒷바라지했던 부모님들의 노고는 또 얼마나 자주 회자됐던가.

1차(객관식), 2차(주관식), 3차(면접)의 치열한 변별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어떤 외부의 관여나 입김이 작용할 수 없고 오로지 성적으로만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감동이 더했다. 힘있고 잘 나가는 부모를 둔 덕이 수시로 작동하는 근래의 시험 유형과 확연히 달랐다. 온갖 연줄과 연고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공정 경쟁을 담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시험이었다는 점에서다. 물론 병폐가 많았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같은데…', '몇 점 부족해서…', '그간 어떻게 해온 공분데…'라는 부족함과 아쉬움이 '장수생'과 '고시 낭인'을 양산했다.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시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오래고 힘든 수학 과정에서 좌절감과 생활고, 뒷바라지 해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극단의 선택을 한 수험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병폐가 누적되고 법률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대하면서 선발 인원이 단계적으로 늘어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에 따라 사법시험은 폐지 수순을 밟아왔다. 지난해 마지막 1차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한 2차시험이 지난 21일 치러졌다. 최종 선발 인원이 50명인 이번 시험을 끝으로 사법시험은 이제 우리 역사의 전설로만 남게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