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행
어느 날의 기행
  • 전주일보
  • 승인 2017.06.22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정현/수필가

땅을 벗어나서는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곤 합니다. 나의 기쁨이 서리고 슬픔을 삭이는 삶의 바탕에 땅은 든든한 배후입니다. 넉넉한 인심을 베풀고 사랑 밭을 가꾸는 마음 씀씀이도 땅의 위대한 허락이 그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 자혜로움에 힘입어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여행하는 자유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땅은 무궁한 변화와 다채로움을 주고 있어 결코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자연의 본향이 아니겠습니까.

  남녘 땅 벌교에 갔습니다. 바다의 혀라는 펄밭에서 온갖 양분을 먹고 자라는 꼬막이 유명한 지역입니다. 한 사발의 꼬막이 풍기는 입맛의 유혹이 한 움큼의 살맛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쫄깃쫄깃한 감칠맛이 입 안에 감돌면서 온 몸에 생기가 도는 아우성을 느끼며, 사는 맛의 호들갑이 거짓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조정래 소설가는 ‘태백산맥’의 어느 구절에 벌교 꼬막이 주는 육감적인 맛에 관한 구수한 이야기를 입 안과 아랫도리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펼쳐놓았습니다. 한동안 그 장면 안에 잠겨 달큼하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준 꼬막타령이 잊히지 않습니다. 하여 벌교 땅 언덕 위 조정래 문학관에 가는 일은 ‘태백산맥’의 웅혼한 줄거리에 왜 꼬막이 등장하는지 그 풍경을 탐구하고, 갯벌 현장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데올로기가 낳은 민족 분단이란 비극의 이야기입니다. 빨치산이 등장하고 빨치산을 토벌하는 토벌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벌교 일대에 준동하는 빨치산과의 일진일퇴의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사랑이야기도 등장하고, 이념을 달리하는 형제간의 첨예한 갈등이 노출되기도 합니다. 문장마다 구수한 남도사투리가 튀어나오고 암암리에 긴장을 거듭하여 손에 땀을 쥐고 읽어야 하는, 살벌하거나 혹은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육필원고 매수가 16,500매에 이르는 대하소설입니다. 그 원고가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은 소설가의 피와 땀과 눈물의 여정이 원고의 페이지마다 들어있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고지에 글자를 채워 넣기 위해 작가는 팔과 손목이 저려야 했고 어깨가 빠질 듯 한 아픔을 견뎌야 했음을 생각할 때,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지요.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 인물과 더불어 장소의 유명세에 힘입어 벌교 사람들의 생채기로 남았던 현장은 역사교육의 산실로 자리 잡고 있는 듯했습니다. 허구문학인 소설의 사실적 묘사가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졌던지, 이를 맹렬히 비난하거나 좌익에 물든 종북론자들의 교과서적 지침이나 교육 내용의 전형이라고 매도당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작가는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온갖 고초를 당했다 합니다. 고발, 고소, 입건, 기소, 재판 등으로 신산스런 나날을 보냈던 잔혹사가 지난날의 신문기사와 책 등의 문건 속에 증거물이 되어 문학관에서 우리 시선을 끌었습니다. 이제 역사의 심판을 거친 사필귀정의 결과물들이 정리되어 문학관이 들어선 이 땅으로 방문객들을 계속 끌어들일 거라는 생각에 안도하며 순천 낙안읍성으로 떠났습니다.

낙안읍성의 오밀조밀한 삶의 터를 보면, 우리 선조들이 살고 싶어 하던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터를 일구고 가꾸는 삶의 생기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짐작이 갑니다. 초가지붕의 정감어린 곡선이 눈에 들어오자 어릴 때 살았던 고향의 비슷했던 집들이 뭉클하게 떠오릅니다. 새마을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초가지붕은 고리타분하고 가난과 남루의 표본이라 하여 깡그리 없앴습니다. 무소불위의 군부독재가 밀어붙인 농촌개량사업으로 슬레이트 지붕으로의 교체가 농촌근대화의 꽃인 양 호도된 적이 있었지요. 슬레이트 지붕이 아니라면 초가지붕의 이엉 얹기는 매년 되풀이 되는 농촌 사람들의 중요한 일거리입니다. 이곳 낙안읍성의 초가집들을 보면서 가난하고 초라하고 추하다는 느낌보다 수백 년 간 유지하고 지탱했던 아늑하고 정감어린 우리 고유의 옛 문화를 대면한다는 감정이 앞섰습니다. 민족 문화와 전통은 선조들의 혈맥이며 유전적 감성으로 면면히 흐르는 삶의 풍경입니다. 그 풍경 속에 우리의 숨결이 녹아있고 조상들과 정신적 연대 의식이 이어지고 있다는 마음이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버스로 돌아다닌 하루의 관광여정이 시간 여유가 충분치 않아 발걸음도 눈도 서둘렀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얻은 땅의 이치와 땅의 아름다운 치장과 변신을 기억의 낱장에 모두 수용했는지 의심이 듭니다. 낯선 풍경과 이색적인 장면에 왕성한 호기심을 갖기엔 우리의 나이가 늙은 탓도 있습니다. 그래도 분명하고 오래도록 변치 않을 땅의 진실을 증언할 이야기는 계속 퍼져 나갈 것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의 발걸음으로 보고 확인한 진실이 가장 옳다고 주장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한, 현장을 보기위한 신발 끄는 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입ek.

황정현/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