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과 태극기
3·1절과 태극기
  • 신영배
  • 승인 2017.03.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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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배 / 대표이사

3·1절 새벽에 모악산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가에선 깊은 계곡임에도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벌써 봄은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다. 봄은 희망을 상징한다. 이 아름다운 계절이 오고 있음에도 우리 마음은 매우 어둡다. 부끄럽게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절차를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이 맹목적인 반공과 냉전논리, 시대착오적인 극우 이념으로 억지를 쓰면서 섬뜩한 구호를 외치며 태극기를 탄핵반대 시위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선열들 앞에 송구스럽고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태극기는 구한말 국가의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민족해방운동의 상징으로 가슴에 품거나 깊숙이 보관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시절에도 태극기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또 광주민주화운동 때에도 태극기는 어김없이 항거하는 시민들의 손에 들려있었다. 올림픽 등 국가대항전에 나가 메달을 따면 애국가와 함께 태극기가 게양됐다. 태극기는 한국의 얼굴이며 국민정신의 상징으로 휘날린 것이다.

그처럼 소중한 나라의 상징을 수구세력 즉, 일부 가당치 않은 정치인과 사람들, 그리고 단체들이 태극기를 탄핵 반대시위의 상징물로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심지어 헌법재판소 법정에서까지 대통령 측 변호인이 태극기를 몸에 두르다 제지를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만약 먼저가신 순국선열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지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통곡을 했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탄핵을 반대하거나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5%이상이 대통령의 탄핵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수사를 원하고 있다.

우리민족과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를 매우 주관적인 사유로 시위현장에 들고 나와 민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하는 짓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지난달 말일 광복회에서도 “태극기를 시위도구로 사용하지 마라”는 입장을 밝혔다. 많은 국민들이 삼일절 태극기를 달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무도한 그들이 생각나고, 자칫 그들에 동조하는 느낌이 싫다는 것이다..

참다못한 국회 권은희 의원은 ‘특정집단 시위서 태극기 사용 제한’을 골자로 ‘국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어쩌면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에도 반대하고 나설 것이고, 앞으로 모든 법안은 그들의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탄핵반대 시위현장에서 태극기를 마구 흔들고 도구로 삼는 짓은 국가상징물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태극기의 상징성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로 단정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사모’들에게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럴 때, 전라도에서는 ‘넋이 나간 사람’이라고 한다. 뭔가 정신을 누구에게 빼앗긴 듯싶은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은 극히 비상식적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제 3.1절 집회에서 수구세력과 보수단체들이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들고 나왔다. 이들은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을 되새기는 날에 사대주의적 행동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3.1만세 기념일 날에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은 역사와 정의, 국민정신이 결여된 파렴치 행위이고 세계가 비웃을 망신이며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김상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지도자를 잘못 뽑은 국민의 업보”라고 단정했다. 그렇다. 김 관장의 말은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 성숙도는 구성원의 수준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면 특정인을 지도자로 지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또한 의무도 있다. 지지했던 지도자가 실정을 하거나 책임질 일을 했을 경우 단호하게 나무라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현실은 박근혜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반성하거나 도덕적인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 자체가 짜증나고, 혐오스럽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결국 헌재의 준엄한 심판과 불법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봄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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