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
변해야 산다
  • 신영배
  • 승인 2017.01.0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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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배 전주일보 대표

오늘은 절기상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이다. 그래서 옛 속담에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고 할 정도로 추위가 매섭다. 일반적으로 소한 때에는 한낮의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기상청 예보를 들어보니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낮 기온이 10℃ 정도로 다소 따듯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와 엘니뇨 영향으로 우리나라 지난해 연평균 기온이 13.6℃에 달해 역대 최고기록을 보이고 있다. 날씨도 추울 때는 추운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추워야할 때에 포근해지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대표적으로 매년 강원도에서 개최되는 얼음축제들이 온난화 현상으로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또 두툼한 겨울옷이 포근한 날씨로 인해 할인판매를 하고 있지만 고객들의 관심 밖이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나 노숙자 등은 포근한 날씨가 무엇보다 반가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자칫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겨울이 따뜻하듯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흐르는 시간에 따라 만물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수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밥술이나 먹고 있는 것은 세계의 흐름에 따라 신속하게 인터넷 망을 구축하고 IT산업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세계 D램 시장을 석권하고 가전품 시장에서 최고급 제품을 내놓는 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변화되고 있는 현상과 생각들을 실천에 발 빠르게 옮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AI)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 : IoT)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의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미 TV광고를 통해 자동으로 조종되는 자동차가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상당기간은 운전대에 손을 대지 않아도 자동차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스마트 자동차 산업이 각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 AI와 IoT의 융‧복합은 가정생활에도 상당부분 파고들어 가전품들이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연결되어 집안의 단속과 관리가 가능해졌고, 인공지능 로봇은 외로운 노인의 동무가 되어주거나 사람의 심부름을 해주고, 비서 노릇도 할 만큼 발달해 있다. 경쟁국인 일본에서는 의회 내 속기사를 로봇(인공지능)으로 대체하겠다고 최근 발표할 정도다.

실제로 지난해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인공지능이 일방적인 우세를 보였던 점을 기억하면, 인공지능의 수준은 짐작하고 남는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종이신문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3~40년 전의 신문용어가 제목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방송과 통신, 포털 등에서 보도된 소식을 다음날 활자로 찍어내고 있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마디로 종이신문의 위기다. 위기를 논하는 것 그 자체가 진부한 이야기로 치부될 정도다. 그나마 재정이 튼튼한 중앙일간지는 지역신문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한걸음 파고드는 취재와 보도를 통해 최소한의 독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 미디어와 연결되고 사람이든 기계이든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소통하고, 신문이나 TV에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핫한 뉴스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고, 태블릿 PC로 3D게임을 하는 시대다.

이 때문에 전주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지역신문들은 종이신문을 기피하는 독자들의 영향으로 재정난에 봉착한지 오래다. 당연히 광고수주와 독자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즉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 종이신문도 변화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문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어떤 포맷이 정해져 있거나 법이나 원칙이 있는 건 아니다. 정형에 얽매어 무조건 남들과 같은 신문을 발행하는 형태는 이제는 지양돼야 한다.

종이신문의 가치는 무한하다. 신문은 민주사회의 존립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종이신문을 떠나 온라인과 모바일 세상에서 뉴스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해도 결국 그 뉴스와 정보 생산의 중심에는 신문이 있기 때문이다.

답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특정 종편에서 찾을 수 있다. 성역 없는 진실을 보도한 특정종편의 뉴스시간대에 시청자가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업 종사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곧 진실이라는 등식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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