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자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
우리의 도자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
  • 김상기
  • 승인 2010.07.25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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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 토요 명사초청 특강
“최고는 자기는 아무래도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실도자기와 궁궐도자기를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이는 구분해서 봐야합니다. 왕실도자기는 왕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그야말로 최상품의 도자기를 가리킵니다. 이 도자기는 때로 왕의 친인척이 궁궐 밖에 기거하며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궁궐 내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반면 궁궐도자기는 전적으로 궁궐 내에서 사용하던 도자기를 가리킵니다. 궁궐 내에는 왕이 사용하는 최상품도 있겠지만, 그 밖의 신하나 아랫사람이 사용하던 중품, 또는 하품의 도자기도 있었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4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토요 명사초청 특강, 지난 24일 본관 강당에서 실시된 7월 특강 주제는 ‘조선의 왕실자기’였다. 강사로는 김영원 현 국립전주박물관장이 나섰다.

한국 도자기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 물론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처럼 이른 시기에 토기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도자기의 역사는 토기에 유약을 바르기 시작한 삼국시대를 기점으로 잡는다.

우리의 도자기는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청자, 그리고 백자가 만들어짐으로써 귀족적 품격을 지니게 된다.

이날 주제가 된 조선의 왕실자기는 ‘분원 백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조선시대 도자기는 크게 조선 분청사기, 조선 백자, 분원 백자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완연히 백자일색이 된다. 이 중 분원 백자는 1467년에서 1468년께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분원에서 생산된 것으로, 왕실과 종친만을 위한 도자기였다.

분원(分院)은 ‘사옹원’이라는 중앙관청의 하급부서로 궁궐과 중앙관청에서 필요한 백자를 전담 제작하던 곳이었다. 조선 말 1883년 민영화되기까지 우리나라 유일의 관요이기도 하다.

당시 사옹원은 왕의 식사를 담당하던 곳으로, 음식과 관련된 일 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거나 보관하는 각종 그릇을 제작하는 일까지 담당했다. 그로인해 궁궐과 중앙관청에서 필요한 백자는 사옹원의 감독 하게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것이다.

김영원 관장은 “분원 백자의 경우 도자기 장인이 아닌 화원이 직접 나가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상품이 아닌 작품의 격을 유지했었다”며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고려시대 이후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지닌 최고의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토요 명사초청 특강은 8월 신응수 궁궐도편수의 ‘궁궐을 통해 본 조선 왕실문화’, 9월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마지막 10월에는 신병주 건국대 교수의 ‘조선왕조실록’ 강좌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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