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된 길을 누가 걷겠는가
포장된 길을 누가 걷겠는가
  • 김상기
  • 승인 2010.07.11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옥마을 둘레길(숨길) 걸어보니
지난해 말 전주시가 명품길 발굴을 내세우며 조성한 한옥마을 둘레길(숨길). 전주시는 당시 전담인력 7명이 한 달가량 현장을 탐방하며 코스를 확정한 후, 환경정비를 완료하고 숨길 안내표지판 36개소, 도보 편익시설(데크시설 외) 등을 설치해 일반에 공개했다.

전주 전통문화센터가 지난 10일 실시한 ‘한결가족과 함께 떠나는 길에서 만난 전주’ 걷기 행사가 바로 이 한옥마을 둘레길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 길은 한옥마을의 공예품전시관을 출발해 당산나무, 오목대, 양사재, 향교 등 한옥마을의 주요 명소를 둘러본 뒤 전주천을 따라 치명자산 입구, 88올림픽 기념 숲, 바람 쐬는 길, 서방바위, 각시바위 등을 돌아오는 총 7.1km, 소요시간 2시간 20분의 코스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한결이네 가족의 남도여행기를 저술한 이경수씨와 함께 한 이날 행사는 원활한 행사 운영을 위해 참가인원을 30명으로 제한했지만, 지난달 말 실시키로 했던 1차 행사가 비로 인해 취소되는 바람에 2차 걷기 행사인 이날 참여인원은 50여 명에 가까웠다.

걷는 중간에 대금과 25현 가야금 등의 국악공연도 감상하고, 짚신을 신고 걸어보는 체험도 해봤으며, 점심은 대형 비빔밥을 함께 나눠 먹으며 함께 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주어졌다.

또한 이날 참가자 대부분이 가족 단위였던 만큼, 가족여행기를 저술해 초청명사로 참가한 이경수씨로부터 가족 여행의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더불어 숲해설가 3명이 동참해 걷는 도중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알차게 준비된 행사에 비해 이날 걸었던 한옥마을 둘레길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전주시가 조성했다는 이 길은 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표된 길이었기에 전주시민들의 참여나 인식이 일차적으로 저조했고, 그로인해 외지인들의 기대치 또한 낮아 보였다. 이날 참가자 대부분이 이 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조성 후 사후관리나 홍보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한옥마을 돌아본 후 본격적으로 걷기에 돌입하는 ‘88올림픽 기념 숲’과 ‘바람 쐬는 길’ 대부분이 포장된 길이라는 점도 명품길이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인다. 자전거 도로로는 훌륭하지만, 걷기에는 부적합한 길이다.

특히 ‘바람 쐬는 길’은 그냥 강을 따라 한참을 걷는 길이고,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심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 행태처럼 산천을 따라 장기도보를 하는 경우라면, 강을 따라 걷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한옥마을 둘레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내던 한옥마을 일대와 비교할 때 이 구간은 대조적으로 너무 심심했다. 한옥마을 일대와 이곳을 하나의 걷기 코스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날 걷기 행사에서 한옥마을 일대를 지나칠 때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하지만 한옥마을을 벗어나자 외지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걷는 사람도 없었다. 자전거만 가끔 보였다. 짚신 신기, 비빔밥 체험 등의 이벤트가 없었다면 행사 참가자들 역시 심심해했을지 모른다. ‘걸어보라’며 지자체들이 조성한 길은 전국각지에 무궁무진하다. 구지 전주까지 와서 포장된 길을 걸어보려는 외지인이 있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