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강신복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
인터뷰 - 강신복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
  • 오병환
  • 승인 2009.09.22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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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과 한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미국의 링컨이 ‘노예해방‘,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저항’의 상징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하면 ‘행동하는 양심’일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중소서민, 남북문제를 걱정하면서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평생 김 전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그와 관련된 책을 집필하는 것으로 그가 남긴 업적과 유훈을 기억하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강신복(49)민주당 청년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장의위원회 장의위원의 경력으로 김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인연을 맺었던 그를 만나, 가슴에 품고있던 회상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강신복 민주당청년위원회 상임부위원장


국장 장의위원으로 참석한 걸로 아는데, 그 소감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같은 훌륭한 분을 모시고 한 시대를 살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크나큰 영광과 행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대통령님보다는 선생님으로 불렀지만 그게 더 익숙했고 그만큼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6일전부터 세브란스병원에 상주하며 쾌차를 빌었지만 결국 선생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고, 이는 비통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광복절 만큼은 넘기실려고 무던 애를 써신 걸로 압니다. 선생님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나라를 원했기 때문이지요. 여하튼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해뜰 무럽부터 해질녘까지 양지바른 국립현충원에 소박하게 모신 국장(國葬) 허토의식까지 참여했던 것은 제 개인으로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압축해 말한다면?
김 전 대통령님은 이 나라 민주화, 인권, 서민보호, 남북화해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사형선고, 납치 등 5번의 죽을 고비와 6여년간 옥고, 가택연금 등 갖은 음해와 고초를 겪으시면서 ‘인동초’처럼 인내하시며 ‘행동하는 양심’으로 버티셨습니다. 선생님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게 ‘총보다 국민과 역사가 더 무섭다’는 확신에 따라 결코 불의와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등과 함께 지난 76년 ‘3·1 민주구국선언’(박정권은 퇴진하라 등)으로 인해 구속 수감된 후 대법원 상고심(징역 5년형)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거론한 후 서거하실 때까지 힘없고 학대 받는 국민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지요. 또한 의회민주주의자이자 6선 의원으로서 4번의 대통령선거 끝에 50여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전 국민의 원성과 국제적으로 망신을 산 IMF 경제환란을 ‘금모으기운동’ 등 빠른 경제회복정책을 강구, 집권 2년(외환보유고 39억 달러에서 816억 달러, 금리 최고 35%에서 한자리수)만에 IMF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경의선 철도 복원’ 등 남북화해협력시대를 열었고, 여성부와 인권위원회 설치, 생산적 복지확충을 통해 최저생계비보장제(4인가족 128만원), 암 등 5대 질병 국가관리, IT강국, 노벨평화상 수상, 월드컵 4강신화 등 신나는 일이 많았던 5년이었지요.

▲ 생전의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간 강 부위원장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는지?
선생님 외곽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지도위원으로 13대 ~15대 대선까지 뛰었습니다. 그때는 살벌한 시기로 대통령선거를 독립운동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3대 대선 개표 때 선거참관인으로 영등포여고 정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새벽 2~3시경 트럭을 타고 온 수십명의 정체불명의 괴청년들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다음날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사수대를 결성하고 구로구청 정문을 밤새도록 지키다 새벽 6시경 최루가스와 함께 백골단에 의해 무차별 진압을 당했던 일,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때는 비일비재했습니다. 87년 12월 5일 여의도광장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동, 서울시청광장으로, 그해 12월 13일 보라매공원에서 한강대교건너 서울역광장까지 선생님을 모시고 ‘독재타도’ ‘대통령 김대중’을 외치며 추운겨울 대선을 함께 한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 18년차인 제가 집사람하고 한강대교 한번 건너지 못했지만 선생님을 모시고 두 번을 건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87년 10월 25일 ‘전대협’ 주최 ‘양김 대통령후보 단일화국민대회’(고려대) 참석한 후 선생님(안암동로터리까지)을 모시고 종각까지 걸어오면서 ‘독재타도’를 외친 일 역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선생님의 연설은 명연설입니다. 논리적이면서 간단 명료하고 많이 배웠던 배우지 않았던 국민 누구나 쉽게 알아듣게 연설을 이끌었습니다. 각종 통계와 예화는 물론 적절한 유머를 구사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탄성과 환호를 지르게 하는 마력 같은 게 있었어요, 참 재미있고 머리에 쉽게쉽게 다가왔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때가 지금도 선합니다. 다시는 그런 명연설을 듣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국장기간중 국회에 전시된 ‘김대중 대통령의 어제, 오늘’의 저자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도서관 로비에 진열되었고 국장기간에도 국회에 전시되었으니 제 개인적으로 영광입니다. 사실 2000년 10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노벨평화상 수상하셨다는 MBC, KBS가 뉴스를 전할 때 이 책을 배경화면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이 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일대기를 쓴게 아니고 그동안(1997년 이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에 대한 음해, 색깔론, 정치공작, 사시시적 편견이나 오보, 언론조작에 대해 잘못되었음을 지적과 함께 ‘오늘’을 통해 ‘국민의 정부’가 가야할 길을 제 나름대로 제시했습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느꼈던 고충이나 애로, 각종 제도나 사회개혁 등 일상을 적었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있는 사람을 위한 정치는 정치가 아니고 없는 사람을 위한 정치가 정치다”,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야말로 참 민주주의 정부, ‘국민의 정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명박 정부도 그런 정부를 만들었으면 하는 게 제 마음입니다. 남북화해협력의 정치, 용산참사와 같은 사태가 없는, 부자만을 위한 정치가 아닌 서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었으면 합니다.

대담.정리=서울, 오병환 기자

▲ 김 전 대통령의 노벨상 자리에서

강신복 주요약력
1961년 김제출생, 이리고와 원광대 졸업,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지도위원,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사수규찰대장, 김대중대통령후보 유세위원 및 정책기획, 바른신문21 연구소장, 민주당 청년위원회 상임부위원장, 민주당 영등포(을) 수석부위원장, 조순형 국회의원 비서관, 김충조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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