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출토 사리봉안기에 대한 최초의 문학적 접근
미륵사지 출토 사리봉안기에 대한 최초의 문학적 접근
  • 김상기
  • 승인 2009.08.3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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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서라벌 밝은 달에 마동이’ 발표하는 진동규 시인

가만히 생각하건데,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의 사리를 남겨 삼천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김상현 교수의 ‘사리봉안기’ 해석 중 일부


가만히 생각하건데 법왕께서
세상에 오시어
근기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의 응하여
몸을 드러내신 것은 마치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으셨다

그래서 왕궁에 나시고
사라쌍수 아래 열반을 보이셨으니

8과의 사리를 남기시어
삼천대천 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네

마침내 오색으로 빛나는
일곱 번 돌게 하는 신통 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진동규 시인이 김상현 교수 해석에서 행과 연을 분리한 것

온가람문화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진동규 시인이 미륵사지 출토 사리봉안기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함께 기존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해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1월 유물이 발견된 이후 고고학적 미술사적 접근이 있어왔고, 이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도 꾸준히 진행됐지만 문학적 관점에서의 주장은 처음이다.

진 시인은 김상현 교수의 해석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괄호 안에 포함된 부연설명을 배제하고, 단순히 행과 연을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사리봉안기의 내용이 훌륭한 시(詩)가 될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김상현 교수가 법왕을 부처님으로 해석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법왕은 무왕의 아버지인 법왕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은 무왕이 자신의 아버지인 법왕을 위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향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진 시인은 이와 함께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대향로 역시 법왕의 일대기를 부조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 향로는 맨 위의 봉황과 받침대를 하고 있는 용, 그리고 몸체로 구성돼 있다. 또한 몸체 가운데를 나눠 아랫부분은 연꽃으로 윗부분은 산봉우리를 겹겹으로 둘러놓아 부조화 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는 문자로 쓰지 않고 당시 잘 발달된 금속공예의 위력에 의지해 법왕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대서사시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래 부분은 오랜 세월 억겁의 인연으로 금생에 태어나 만나게 되고, 그리하여 서동이 태어나게 되는 출생의 이야기이고 중간으로 올라가면서 법왕의 생애와 그가 펼쳐 보였던 삶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상부는 백제가 꿈꾸었던 미륵세상의 도래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읽혀진다는 것.

진 시인은 “오래전에 부여에 갔을 때 금동대향로가 하도 예뻐서 모사품을 하나 사서 항상 곁에 두고 보아왔지만,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게 늘 있어왔는데, 미륵사지에서 사리봉안기가 나오면서 그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학계에서 이런 주장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히 당연한 해석”이라며 “사리봉안기와 금동대향로에 대한 보다 다양한 접근이 이뤄져야 그 유물들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진 시인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시극 ‘서라벌 밝은 달에 마동이’를 (사)한국문인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문학’ 9월호에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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