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은 ‘2024년 역사문화권 중요유적 발굴조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고창 봉덕리 고분군 3호분 2차 발굴조사 성과를 지난 29일 오후 공개했다.
고창 봉덕리 고분군 3호분의 학술조사는 2019년 분정부(墳頂部)에 대한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모두 6차례에 걸쳐 시굴 및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3호분의 규모는 동-서 약 70m, 남-북 약 80m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의 분구묘 중 가장 크다.
발굴조사는 서사면 일부에 대해 실시해 분구의 축조기술과 통나무관, 옹관묘, 주거지 등을 확인했다. 이번 2차 발굴조사는 3호분의 축조 방법 및 시기, 매장주체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남쪽사면부에 대해 진행했다.
3호분의 발굴조사 결과, 2차례 이상 분구를 축조했던 것을 확인했다. 1차 분구는 기원후 3~4세기를 전후한 시점으로 자연 구릉에 낮은 분구묘로 확인된다. 분구 내부에는 토광묘 및 옹관묘 등을 매장했으며, 도랑(周溝)을 굴착했다.
2차 분구는 5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고분을 높게 쌓았는데 분구의 중앙을 격자망으로 회백색, 흑갈색의 점토 덩어리로 구획해 쌓은 양상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분구는 약 2.5~3m 내외의 폭으로 격자망 구획을 한 다음 점토덩어리를 구획 경계로 삼고 약 4m 내외로 수직으로 쌓아 올려 대형의 고분을 축조했다. 또한 분구 둘레는 도랑(周溝)을 굴착해 고분의 경계로 했으며. 분구 끝자락에는 토기 1~3점씩 매납한 것이 확인됐다.
3호분의 1차 분구 축조 시기는 토광묘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호, 양이부호 등의 토기를 볼 때, 기원후 3~4세기로 판단된다. 2차 분구 축조 시기는 성토과정에서 확인된 토기편과 주구 안쪽에서 매납된 호형토기 및 장경호 등을 통해 기원후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3호분의 발굴조사 결과 분구가 거대화되는 과정에서의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1호분의 성과와 더불어 마한 분구묘 중 가장 큰 규모인 3호분의 운영 기간 등으로 볼 때 마한 50여 소국 중 ‘모로비리국’의 중심 세력의 묘역임은 분명하다.
심덕섭 군수는 “이번 봉덕리 고분군 3호분의 2차 발굴조사를 통해 마한 최대 분구묘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사적 확대 지정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유산청 역사문화권 역사문화환경 정비육성 선도사업 공모 선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태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