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날, 길다방과의 만남
나른한 봄날, 길다방과의 만남
  • 김상기
  • 승인 2009.04.12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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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사람, 길 위에서 마시는 커피

커피 한잔하기 딱 좋은 날이다. 춘곤증인지 식곤증인지 몽롱하고 나른해지는 오후 무렵. 커피향기 그윽한 전북대학교 인근의 커피전문점을 찾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흔히 눈에 띄는 주점이 자리했던 자리. 겨울이 지나는 사이, 이곳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가에 있지만 모던한 카페인 듯 대학생들이 몰리는 곳과는 느낌이 다르다. 우선 주인장과 마주 앉는 널찍한 바가 눈에 띄었다.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바(Bar) 라니….

호기심에 일단 앉고 보니, 기계가 아니라 두 손으로 커피를 내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건 무슨 커핀데 손으로 내려요? 아차~ 싶다. 콜롬비아 수프리모, 과테말라 아카테낭고, 이디오피아 이가체프~ 듣도 보도 못한 커피 브리핑 5분!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아담한 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전북대학교 실내체육관 맞은 편 골목 커피전문점 ‘길 위의 커피’. 그렇게 길다방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 커피가게에 바(Bar)가 있는 건 생소한대
바는 소통을 의미하죠. 손님들과 소통하기 위해 바 밑 부분을 파서 손님들 눈높이와 맞추고 저희들이 일하는 모습을 손님들에게 모두 공개합니다. 그러다보니 바에 앉는 손님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죠. 혼자 오는 손님들도 자연스레 바에 앉아 쉬었다 가곤 하세요.

* 이곳 커피가 다른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별 메뉴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항상 최고의 정성으로 만들려고 해요. 원산지별 커피마다 그 커피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이 다르거든요. 그 커피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최대한 표현해 주려고 노력하죠. 그래서 로스팅과 핸드드립에 특별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 손으로 커피 내리는 모습, 아직은 조금 낯설다.
그렇죠. 아직은 낯선 풍경이죠. 관심을 가지고 핸드드립 커피를 찾는 분들이 느는 추세긴 하고요. 신기하게도 길다방에선 핸드드립을 찾는 분들이 많아요. 얼마나 감사한지. 함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게 가슴 뛰게 행복합니다.

*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커피가 있다면
날이 따뜻해지면서 아이스 종류 찾는 분들이 많으신데 핸드드립도 아이스가 됩니다. 특히 이디오피아 이가체프는 아이스로 마시면 와인 풍미도 나고 아주 맛있죠. 카페인도 적어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요.

* 기계로 뽑는 커피보다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 텐데
느리게 살려는 문화는 커피에도 도입되고 있어요. 속도 느리기로 최고인 커피가 있습니다. 무려 10시간 이상 걸려서 추출하는 ‘더치커피’죠. 한 방울 한 방울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 커피의 눈물이라 부릅니다.
* 학교 앞이라 학생들이 주 고객층일 것 같은데
저희가 처음 커피숍을 준비할 때 비록 학교 앞이지만 20대 뿐만 아니라 30대와 40대, 그 이상의 모든 연령층이 함께 어울리는 그런 커피숍을 표방했거든요. 그런데 얼추 그 콘셉트가 맞아가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도 오지만 직장인과 주부들도 많이 오세요.

* 분위기가 굉장히 모던해 보이는데, 중년층들 취향에 맞다니
일단 이름이 ‘길 위의 커피’, 애칭이 길다방이다 보니 중장년층에겐 이름이 일단 추억을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카페 운영을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30대의 올드한(?) 언니, 오빠들이 하는 것도 일조하는 것 같구요.

* 커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은 데, 세 분은 어떻게 뭉쳤나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에요. 졸업 이후에 서로 직장 다니면서 주말이면 뭉쳐서 커피 마시러 다니곤 했는데, 그때 우리 카페해볼까 하다다 이렇게 됐죠.

* 이름이 ‘길 위의 커피’인데, 길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지
길이란 누군가의 흔적인 것 같아요. 누군가 그랬죠. 길은 누군가 걸어야 그때부터 길이 된다고요. 길 위의 커피도 손님들이 걸어주지 않는다면 길이 아니고, 길 위의 커피가 될 수 없는 거니까요. 길은 ‘더불어 함께’ 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 커피사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조언을 해준다면
무언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 길을 가야죠. 하지만 그저 유행을 쫓는다면 좋지 않다고 봐요. 정말 가슴에서 간절히 원해서 카페를 한다면, 아~ 먼저 커피를 간절히 좋아한다면 그때는 박수쳐 환영해주고 싶군요.

* 길다방이 손님들에게 어떤 곳이 되길 바라는지
길 위에 서면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하게 되잖아요. 그때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 위의 커피에 당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길 위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타라도 배우는 사람처럼 커피의 열기로 항상 빨갛게 부르터있는 손끝. 훈장처럼 활짝 펼쳐 보이는 웃는 세 사람의 웃음에서 커피 향기가 난다. 테이블 위의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길 위에는 온통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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