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행 뱃길에서
위도행 뱃길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4.06.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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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풍/수필가
최규풍/수필가

​지난 5월 16일 선선한 바람이 나를 깨웠다. 신아문예대학 인문학 글쓰기 반에서 위도 가는 날이다. 위도는 초행이라 모든 게 궁금하다. 격포항은 자주 들렀지만, 위도는 멀리서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위도는 위험한 느낌이 든다. 페리호 침몰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위도의 위는 위태할 위(危)가 아니라 섬 모습이 고슴도치를 닮아서 고슴도치 위(蝟)다. 아닌 게 아니라 멀리 육지에서 바라보이는 섬은 고슴도치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격포항에서 손에 잡힐듯하지만, 위도항까지 16km에 배로 40분이 넘는다. 원래 전라북도 부안군의 섬이 전라남도 영광군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부안으로 되돌아왔다.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는 섬을 놓고 네 땅이니 내 땅이니 선을 긋는다. 섬뿐이 아니다. 금산군은 전라북도였는데 충청남도로 바꾸었다. 도세가 약하면 항의도 못 한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 생존의 법칙이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제물로 삼는다.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다. 위도가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온 것은 1963년이다. 1962년에 금산군을 충남에 편입하여 흉흉해진 전북의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무마용으로 느껴진다. 아무튼 섭섭하다.

배는 하루 여섯 번 격포항에서 출항한다. 내가 승선한 선박은 두 번째로 아홉 시 45분이다. 1층은 차들이 빼곡하다. 계단을 오르니 2층은 여객 선실이다. 의자가 없다. 앉아 있는 사람, 드러누운 사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다가 궁금해서 갑판으로 나왔다. 배는 육중한 몸으로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서서히 잠 깬 바다를 헤쳐나갔다.

누가 서해를 황해(黃海)라 하는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새만금방조제가 바다를 창해(蒼海)로 바꾸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며 맑고 푸른 바다가 아름답다. 뱃머리는 바람이 사납게 나를 밀어 배꼬리로 피하니 하얀 물거품이 바다를 가른다. 격포항의 등대가 잘 다녀오라고 손짓한다.

새만금방조제가 배를 따라오며 열차 밖 전깃줄처럼 평행선을 달린다. 33.9km로 세계에서 첫째가는 방조제다. 가도 가도 따라오며 내게 하소연한다. 군산과 김제와 부안이 땅뺏기 하느라 지역이기주의가 극치에 이르렀다. 욕심의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볼썽사납다. 새만금이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어떻게 좀 달래보란다.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 부탁하는가? 세 지역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 양보해야지. 지역이기주의만 앞세우다 보면 모두가 피해를 본다.

갈매기가 처음부터 따라오며 뱃전을 맴돌았다. 사람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려고 손에 잡힐 듯이 곡예비행을 한다. 일하지 않고 손쉽게 받아먹으니 얼마나 좋은가. 갈매기가 낚시를 포기하고 배를 따라다닌다. 자력으로 먹이를 구하지 않고 갈매기도 공짜를 좋아한다. 서로 먼저 먹으려고 눈이 뒤집힌다.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위도가 가까워지자 작은 섬 하나가 보인다. 이웃에 물으니 배가 침몰했던 임수도란다. 위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위도항까지 불과 1.7km다. 섬을 가까이 지나가니 가슴이 섬뜩하다. 나도 그날 그 배를 탔으면 이승에 없을 것이다. 1993년 10월 10일에 서해훼리호가 362명을 태우고 격포항으로 돌아오던 중에 높은 파도를 만나 침몰하여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도 주민 50명과 관광객, 추석 귀성객을 비롯하여 주말 낚시꾼들인데 구명조끼를 찾지 못해 피해가 컸다.

정원이 207명인데 너무 많은 인원을 태워 정원을 초과했다. 여러 가지 화물 과적에다 기상악화가 사고를 불렀다. 선미를 강타한 거센 파도에 복원력을 잃은 배가 쓰러졌다. 기상청은 강풍이 불고 파도가 높으며 순간적인 돌풍이 부니 항해를 삼가라고 예보했다. 그런데도 왜 위험을 무릅쓰고 출항했을까?

그날 바다는 지옥이었다. 바람은 풍랑이 거세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이승과 저승은 순식간이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기도 귀하고 선장실의 무선 전화기도 발전기가 침수되어 작동하지 않았단다. 추운 바닷물에 가라앉고 1초가 급한데 구조선이 와도 이미 늦다. 해양 경찰과 119구조대는 한 시간 뒤에야 도착했다. 상황이 끝난 뒤다. 다행히 사고 지점 부근에 낚싯배와 어선이 있어서 70명을 구조했다.

배가 위도 파장금 항에 들어가며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흠칫 잠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왔다. 바다는 옛일을 잊은 듯 조용하고 여객선을 맞이하는 항구는 짐짓 생기가 돈다. 일행들과 배에서 내리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어깨를 스치듯 지나 날아간다. 좋은 글감 하나 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발걸음들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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