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할아버지
꽃 할아버지
  • 전주일보
  • 승인 2024.05.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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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문광섭/수필가
문광섭/수필가

꽃의 계절이다.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꽃바람도 쐬었던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지고 있다. 작은 풀꽃에서부터 산 벚꽃까지 꽃 잔치 일색이다. 며칠 전, 전주교구 순교자 묘역이 있는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로 노력 봉사를 나갔다.

주차장 주변의 잡초 뽑는 일을 하게 되었다. 뾰족한 호미를 들고 나섰지만, 원래 일을 안 해본 터라 손으로 하는 게 오히려 수월했다.

꽃잔디, 수선화 등 화초를 제외하고 잡초를 제거해 달라는 부탁은 받았지만, 막상 작은 풀꽃을 발견하고선 어찌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세 개 잎사귀에 초롱처럼 생긴 노란 꽃인데 어찌나 예쁜지 들여다보다가 어린애처럼 동심으로 돌아갔다.

얼른 스마트 폰에 담아 내 과학 선생한테 보냈더니 ‘괭이밥’이라고 알려주었다. 난 그동안 화초에 대해선 아는 게 없는 문외한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관심을 두고서 배우는 중이다. 그저 철 따라 피는 꽃에 일시적인 감정은 가졌으나 오늘처럼 감동하기는 두 번째다. 오래전 전주천을 걷다가 신발 끝에서 잡힌 ‘봄 까치 꽃’에 매료된 적이 처음이었다.

잠시 쉬면서 왜 그동안 작은 ‘풀꽃’엔 관심이 없었는가? 생각해 봤다. 이젠 나이가 망구(望九)를 넘긴 탓에 관심이 생긴 거고, 이전에는 덤벙대는 성격에다 세밀하지 못한 탓이었다. 문득, P 교장 얼굴이 떠올랐다. 나와는 50여 년 지기다. 여기 오기 전 식사를 함께하고 우연히 형이 사는 아파트 단지를 걸어오게 되었다.

철쭉꽃이 호사스럽게 반겼고, 큰 화분에 예쁘게 핀 메리골드가 방긋거려서 예전에 들었던 말을 기억해 내고, “지금도 아파트 단지 내 꽃 가꾸기를 계속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이젠 꽃 할아버지로 바뀌었어!”라고 대답했었다.

형은 교직 정년 때까지 단독주택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아파트로 옮기고 싶었으나 경쟁률이 높고 당첨이 되질 않았다. 늦게서야 소원대로 중화산동 소재 H 아파트로 이사해선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작정했단다. 동대표와 총대표로 6년 동안 봉사하면서 전공을 살려 아파트 환경조성에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목표는 ‘아파트 단지 내 꽃길 조성’이었다. 처음, 장미꽃 20여 그루 전지를 시작으로 튜립 수선화 홍초 등을 심어 봤으나 개화기가 짧아 적절치 않았다. 시내 도로변에 식재된 메리골드로 바꾸고자 모종을 매입하여 심었더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씨앗을 사서는 관리원 아저씨와 함께 가꾸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는데, 어느덧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형의 이야기 가운데 “모든 식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 어른의 말씀을 교훈 삼아 정성을 다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었다. 나 역시 기억하는 말로 ‘사람으로 태어나선 자식도 길러보고, 농사 아니면 화초라도 가꿔 봐야 삶의 이치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고 들은 바 있다.

한데, 난 자식은 키워봤어도 지금까지 농사일로 상추 한 포기 심거나 가꿔 보지 않았으니 잘못 산 셈이다. 다만 아내가 화초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난을 가꾸고 있는데, 그 정성이 대단함을 알기에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하고 있다. 죽어 가는 난도 아내를 만나서 열흘만 지나면 금시 빛깔이 달라지고, 한참 지나면 꽃대가 나오는 걸 보면 옛 어른들 말씀이 헛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다시 일을 시작하여 조심스레 잡초를 뽑는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내 눈으로도 아주 예쁜 작은 풀꽃을 마구 뽑자니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아파 온다. 이제 막 피어난 작은 풀꽃의 생명을 인정사정없이 앗아가는 내 처신이 안타깝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또다시 ‘꽃 할아버지’의 상냥한 미소가 뇌리를 스친다. 꽃들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고 마음으로 어루만지며 섬기니, 꽃도 더 예쁘게 피어나지 싶다. 꽃을 좋아하고 가꾸는 이들의 심성을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같은 삶을 살아도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생명과 교감하며 즐기는 인생이야말로 더 풍요로운 삶이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풀꽃이 안겨주는 오묘한 신비를 틈틈이 흠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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