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三川) 봄맞이
삼천(三川) 봄맞이
  • 전주일보
  • 승인 2024.04.18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 수필
김고운/수필가
김고운/수필가

3월 중순, 쉬는 날이어서 삼천 천변길로 봄꽃을 찾아 나섰다. 봄이 왔는데 이런저런 일에 쫓겨 풀꽃을 보러 나가지 못해 들썽이다가 마침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풀꽃을 보러 나갔다. 며칠 전에 자전거로 둘러보았을 때는 봉오리만 보였는데 오늘은 여기저기 꽃이 피어 있었다. 별꽃,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은 큰개불알꽃, 좁쌀냉이꽃, 광대나물꽃이 보였다. 하필이면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여서 꽃들이 모두 입을 다물어 예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간혹 절반쯤 얼굴을 보여주는 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삼천(三川)의 봄은 이들 풀꽃이 피면서 열린다. 맨눈으로 보면 꽃이라고 알아보기도 힘든 작은 꽃들이지만, 접사 렌즈를 통해 촬영해보면 장미나 모란의 아름다움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꾸미지 않아 순수하고 청초한 산골 소녀처럼, 내 누이처럼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작은 꽃들이다. 한쪽을 온통 차지한 별꽃이나 봄까치꽃 무더기를 만나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쉽게 일어서지 못한다. 자연의 신비에 저절로 끌려 들어간다. 모닥불을 지펴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불멍처럼 나는 그 앙증맞은 풀꽃을 들여다 보다가 풀꽃 멍(?)에 빠져들기 일쑤다.

 

2월부터 4월 초순까지 들판 곳곳에 파란 별처럼 촘촘히 피어 빛나는 봄까치꽃 무더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파란색에 마젠타색이 스며들어 약간의 자색을 띄는 푸른 별 같은 꽃, 가운데를 향해 자색에 가까운 푸른 줄이 방사형으로 모여 있고 그 가운데에는 꽃술 2개가 오똑하니 서 있다. 꽃을 보노라면 신들이 머나먼 하늘나라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무수히 설치해 놓은 안테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의 가운데에 전파를 발사하는 신호기처럼 뻗은 두 개의 꽃술 끝에는 좀 더 짙은 색의 꽃가루가 달려 있다.

 

봄까치꽃만 아니라, 땅바닥에 바짝 쪼그리고 앉아야 자세히 볼 수 있는 꽃, 별꽃, 개별꽃, 광대나물꽃, 얼치기완두랑 작은 꽃들은 맨눈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접사렌즈를 낀 카메라를 통해서 쪼그리고 앉거나 엎드리다시피 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면 늙은 몸이 곳곳에서 아우성을 친다. 저리고 아프고 결려서 노구(老軀)가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도 작은 것들에서 장엄함을 느끼게 되고 그들을 놔두고 쉽게 일어설 수 없다. 고등학생 시절에 예쁜 여학생에 마음을 뺏겨 날마다 등굣길에서 그 여학생을 보고서야 학교에 갔다. 교문 앞에서 지각생을 잡는 선생님에 걸리지 않으려고 담을 넘다가 잡혀 치도곤을 당하던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열정이 늦게 풀꽃 사랑으로 타오르는 즈음이다. 맨날 봐도 같은 모양인데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으니 문제다. 그렇게 찾아가서 보고 카메라에, 스마트폰에 담아 오면 다시 컴퓨터에 옮겨 확대해서 보고 정리해서 다시 저장하기까지 여러 번 본다. 이제 질릴 만큼 많이 보고 많이 촬영해서 저장해 두었으니 그만 쫓아다닐 법도 한데, 틈만 나면 들판으로 천변으로 찾아 나간다.

 

선계의 안테나인 듯 피어나는 파란 봄까치꽃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그 작은 꽃들이 내게 전해주는 저 먼 하늘나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냥 보고 있으면 좋은 그 작은 꽃들을 몇 번이나 집에 옮겨와 심어보려 생각했지만, 참았다. 녀석들을 화분에 심어 두고 인공조명으로 빛을 주면 잘 피워줄 듯싶지만. 자연의 바람이 없는 내 작은 공간에서 꽃들이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다.

 

장미가 파티복에 성장(盛粧)한 여인이라면 풀꽃은 사슴과 학()을 불러모아 선계(仙界)에서 노니는 작은 선녀라고 해야 할까? 그 풀꽃에 마음을 뺏겨 신도(信徒)로 살기를 자원한 지 벌써 여러 해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더 그립고 보고 싶어 한다. 겨울이 이울어가는 설날 무렵이면 벌써 마음이 싱숭생숭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공연히 들판이나 양지쪽 풀이 나는 곳에서 서성거린다. 가끔은 일부러 풀꽃이 피었음 직한 남도(南道)를 찾아가 풀꽃을 만나고 돌아오기도 한다. 컴퓨터에 수백 장 풀꽃 사진이 있어서 볼 수 있지만, 사진으로 열 번을 보아도 꽃샘바람 부는 들판에서 흔들리는 풀꽃 한 포기가 주는 위로에 비할 수 없다.

 

 

다시 4월이다. 천변에는 별꽃이 만발하고 또 다른 내 사랑인 꽃마리도 피었을 것이다. 비를 맞아 깨끗이 목욕한 봄까치꽃, 꽃마리, 별꽃, 좁쌀냉이, 광대나물을 다시 만나서 지난해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질리도록 풀어봐야겠다.

 

벚꽃이 꽃비로 내리는 천변에 앉아서 풀꽃을 보며 넋을 잃어도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풀꽃 멍에 빠져들면 삭막한 가슴에 윤기가 돌고 쪼매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