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꽃 피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 김규원
  • 승인 2023.05.18 09: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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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수필가
김영숙 / 수필가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별이 따르기 마련이다. 모든 관계는 만남이라는 시작과 함께 예고된 이별을 향해 나간다. 가수 김광석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노래했다.

조병화 시인은나를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내가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내가 슬프게 한 사람이나, 인생은 그저 만났다가 헤어져 가야 하는 먼 윤회의 길이라며 만남의 기쁨이 어찌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겠냐”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만남의 기쁨에만 매몰되어 살다가 갑작스러운 이별은 대처하지 못하고 마냥 슬픔에 젖는다나에게는 최근 그런 만남 끝에 이별한 분이 계신다.

친정어머니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다가 지난 3월 초, 예고 없이 훌쩍 떠나셨다. 바로 임실 문인협회 김여화 고문님이다. 우리의 만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임실군에서 주관한 편지쓰기 대회에서 내가 우수상을 받은 날이니, 그날이 요즘 MZ 세대에서 유행하는 시절 인연 1일이었다.

그 당시 주최 측에서는 참가자들이 쓴 편지를 직접 받는 이에게 보내줬다. 그러나 내 편지만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친정어머니께 편지를 썼는데, 그 무렵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때 임실 문인협회 회장이자, 심사위원이셨던 김여화 님은 군청에다가 나한테 대신 보내라고 부탁했어요. 내가 엄마 역할을 해주려고요. 답장도 해줄게요하시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나를 문인협회에 입회시키고 글쓰기 공부도 시켜주시며 물심양면으로 살펴주셨고싹수가 보인다,’며 언젠가는 꼭 필요한 일꾼이 될 것이라며 용기도 주셨기에 수필로 문단에 등단도 하여 현재 임실 문인협회 일도 꾸려가고 있다나에게는 정채봉 시인의 만남’ 처럼 슬플 땐 눈물을 닦아주고 힘이 들 땐 땀을 닦아주는 그야말로 손수건 같은 만남이었다

관촌에서 임실로 볼일이 있어 오실 때면 늘 내 직장인 약국에 오셔서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시며 네가 여기 있으니 참 좋다. 오가며 아무 때나 와 잠시 와 쉴 수도 있으니하셨고 그렇게 자주 오면서도 한 번도 빈손인 적은 없었다. 어떤 날은 커피를, 어떤 날은 떡을 늘 간식거리를 들고 오셨다.

약국 앞에 꽃이 없으니 삭막해야!” 하며 올봄에는 할미꽃도 심고 매발톱꽃 씨도 뿌려 주고 정성스럽게 손수 꽃꽂이해서 키운 공조팝나무도 약국 주변에 심어주셨다김장철이면 농사지은 양념거리를 다 챙기고 가끔 생김치를 담으면 챙길 사람도 많을 텐데도 늘 내 몫도 챙기셨다고추장은 물론이요, 된장도 챙기는 그야말로 친정어머니 역할을 해주셨다

이렇듯 많은 날을 받고만 살았는데, 나는 아직 받은 만큼 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시 낭송 수업도 해주시기로 해놓고, 유달리 쇠고기 육회를 좋아해서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너는 아직 순번이 멀었어. 나 맛있는 거 사 준다는 사람이 한 줄이나 서 있어. 먹고 싶으면 그때 말할게” 하시며, 바쁜 일 지나면 구례 문인들이나 만나러 한번 가자고 해놓고, 그 많은 약속을 뒤로하고 무엇이 바쁘다고 일흔 살밖에 안 살고 급히 떠나버리셨을까?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는 구급차에서부터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또다시 미처 안녕을 고하지도 못한 채 느닷없이 맞은 이별에 망연자실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번호 버튼을 누르다 끓었다 반복했다.

如花! 꽃 같은 이름이라 그랬을까?.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던 분, 그분의 뜰에는 갖가지 들꽃들이 계절마다 피고 지는데 이제는 그 꽃은 누가 돌봐주려나! 당신이 애지중지 키워 분양해 준 할미꽃은 곱게 피었다가 지고, 공조팝나무도 송이송이 하얀 꽃이 만발했는데, 매발톱꽃은 싹을 틔워 저마다 영역을 넓혀가는데 꽃은 이제 해마다 피어나겠지만 그분은 어디에도 안 계신다.

고추장을 먹을 때도, 된장을 먹을 때도, 김장철이 되어도,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 불현듯 커피 한잔 들고 오실 듯하여 자꾸만 문 쪽으로 눈을 두고 귀를 세우는 날 많다. 그 많은 날을 의지하고 살았으면서도 이리도 빨리 이별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

늦었지만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드렸던 인사말을 이제는안녕히 가십시오. 주신 마음 잘 베풀며 살겠습니다.’라고 안녕을 고한다그리고 이제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도 모를 이별을 위해 매일 안녕하며 살아야겠다.

안녕이란 인사는 만남에도 쓰지만, 때로는 다시 못 볼 사람에 대한 이별사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든 상대의 평안을 비는 말이니까. 늘 인연을 맺은 분들에게 고마웠던 순간순간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꽃 같은 당신을 만나 행복했다는 말은 꼭 전해드리고 싶다.

如花님이여! 당신은 언제나 꽃이었습니다. 그러니 해마다 꽃으로 오십시오. 그 꽃 피면 나는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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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2023-05-19 08:50:59
임실문협이 전신이라할 만큼 열정적이셨던 분이었는데 ㅠㅠ영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