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한 마음, 현명한 선택
선(善)한 마음, 현명한 선택
  • 김규원
  • 승인 2023.04.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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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올봄 날씨는 시집 못 간 손위 시누이 심통 부리듯 종잡기 어렵다. 새벽엔 춥고, 낮이면 겉옷을 벗어야 할 만큼 기온이 오른다. 금세 비가 내리다가 우산을 챙겨 들면 말짱하게 갠다. 황사, 미세먼지가 나들잇길을 훼방(毁謗)하기 일쑤고 바람은 옷깃으로 파고든다.

날씨만 그런 게 아니라 나라 정치도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날마다 터져 나와 정신 줄을 쏙 빼놓는다. 철딱서니가 나뭇간에 들어가 부싯돌을 딱딱거리는데 옆에는 알랑방귀에 발라맞추기 선수들이 잘한다, 잘한다라며 부추기고 있으니 아슬아슬해서 소름이 돋는다.

여야(與野) 할 것 없이 내년 총선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지역구 사업은 다 내 덕분이라고 공() 부풀기에 여념이 없다. 언론은 그 공치사에 장단 맞추느라 스탭이 꼬이는 줄도 모른다. ‘기레기신세가 된 지역 기자들은 오늘을 사느라 내일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이런 한심한 세상이지만,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남아서 썩어 문드러지는 세상에 소금이 되어주고 있다.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남을 딛고 올라서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 되어버린 삭막한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지난해 12월 한 공중파 방송에서 소개한 전주시 인후동의 과일가게 부부가 건물을 지으면서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을 위해 건물 사이에 통학로를 낸 사연을 소개했다. 부부는 공터에 상가를 지으면서 아이들을 위해 통학로를 내주었다.

부부는 공터에 상가를 짓기 위해 쇠말뚝을 박고 줄을 둘러 건축 예정지를 표시했는데 아이들 2~300명이 매일 학교에 갈 때마다 줄 밑으로 들어가 등교하는 알게 되었다. 만일 그 자리에 건물을 지으면 아이들은 훨씬 멀리 돌아서 학교에 가야했다.

더구나 아이들이 통학할 도로는 차량이 빈번하게 다니는 곳이어서 사고의 위험도 있었다. 부부는 궁리 끝에 건물을 두 동으로 짓고 두 건물 사이를 아이들의 통학로로 쓰도록 배려했다. 건물을 제대로 지으면 매월 1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그렇게 배려한 지 10년이 지나 지난해 말에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고 잇따라 각종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중앙 언론들도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의 선행을 칭송하는 기사가 실리면서 유명해졌다. 부부는 통학로 유지를 위해 통로 바닥을 보수하며 배려한다.

전북 전주(全州)에는 그들처럼 선한 사람들이 옛날부터 살아왔던 배려의 도시이고 인정의 도시다. 오래전에 필자의 형이 전남 해남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을 때, 형을 보러 해남에 간 일이 있었다.

도착한 시간이 애매하여 인근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지긋한 주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전주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아이고 반갑습니다. 양반도시에서 오셨네요.”라며 반가워하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반찬을 내놓고 전주보다 맛은 없지만, 맛있게 드시라고 권했다.

갑작스런 환대에 뜨악해서 물으니 전주분들 양반이지요. 인정이 있고 어려운 사람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 좋은 분들이지요.”라며 자신이 젊은 시절에 전주에서 곤란한 지경을 당했는데 여러 사람이 도움을 주어 무사히 해남에 돌아올 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주의 세덤이야기를 몇 번이나 이 지면을 통해 소개했지만, 전주 이야기를 하려면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니 또 한 번 소개한다. 지난날 전주는 전라도 수도(首都)이고 곡창지대의 중심이었으므로 식량과 물산이 풍부했고 외지에서 찾아오는 과객이 많았다.

웬만한 가정에서는 밥을 지을 때 식구들 몫 외에 밥 세 그릇을 더 지어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 손님이 오거나 지나가던 과객이 밥을 청하면 주기 위해서였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주에서는 배를 곯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전주 사람의 넉넉한 인심이 오늘에도 이어져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23년째 선행을 이어오고, 매년 연말에 사랑의 온도탑에 불을 밝힐 때면 가난한 전북이 가장 맑은 불을 밝히는 결과를 보였다. 지난 13일에도 김제시에 얼굴없는 천사가 1억원을 기탁하며 어려운이들에게 써달라고 했다.

돈 많고 인구도 많은 부울경 지역은 가까스로 100도에 턱걸이하거나 미달이었지만, 전북은 지난해에도 140.8도를 기록해 전국 최고 실적을 올렸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남을 위해 더 많이 내놓을 줄 아는 이들이 전북인이다. 쓰고 남아서가 아니라 나눠 쓰려는 마음이다.

앞에 소개한 인후동 과일가게 박 씨의 선행도 오랜 전주 사람의 배려심이 이어진 아름다운 사연이 아닌가 싶다. 전주 사람들의 판단이나 선택은 늘 합리적이었다. 누구의 선동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선거에서도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선택한다.

지난 4.5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당의 강성희 후보가 당선한 일도 전주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지만,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자가 당선하면 민주당에 돌아가 힘을 보탤 것이라는 메시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헛발질과 폭정에 가까운 정치, 그에 빌붙어 알랑거리는 국민의힘이 갈팡질팡하는 데서도 반사이익을 제대로 얻지 못할 만큼 무능한 민주당에 경고를 날릴 줄 아는 시민들이다. 과거에도 보수 정당의 후보를 당선시켰을 만큼 전주 시민은 냉철하고 현명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정치판 인사들의 동향이 눈에 거슬린다. 늘 하던 방식대로 실적을 부풀리고 얼굴 내밀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민주당 깃발을 얻기 위해 온갖 발싸심을 다 한다.

전주시민과 전북 도민들은 그런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날처럼 깃발의 색깔만 보고 선택하지는 않을 듯하다. 4.5 선거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후보에 표를 주었듯이 시민들은 가능성을 보고 있다.

어제의 수법이 내년에도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폭주하는 여당만 아니라 무능한 야당도 얼마든지 응징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현명해진 주인들은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먼저 보고 판단한다.

달라지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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