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됨에 힘이 되는 말의 길
사람됨에 힘이 되는 말의 길
  • 김규원
  • 승인 2023.04.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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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15

 

하늘 길 썩은 동아줄을 잡은 자는 결코 놓지 않겠다며 ~고 월척 잡은 트로피가 녹슨 사연부터, ~는데 낡은 사랑이 통음하는 안주가 된 미담을 거쳐, ~으며 보이스피싱 풀어놓은 함정 기사까지 줄줄이 꿰어 뒷동산에서 천왕봉까지 오르내리곤 한다 오천 년 동안 밥을 굶고도 저리 씩씩한 등정이 가능하다니 왕손을 우러르는 선진국 중생들은 하릴없이 방생된 물고기 신세가 되어 눈은 도리도리 입은 뻐끔뻐끔 내리막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

 

-졸시방담放談- 내 서정의 기울기6전문

 

말하기는 말하기-듣기-쓰기-읽기네 가지 언어활동 가운데 첫 번째 행위에 해당한다. 말이 되었건 무슨 음향이 되었건 소리가 있어야 듣기가 가능할 터이며, 들어야 할 말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쓴 것-그것이 자연발생적인 자취라 할지라도 뭔가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읽기라는 행위는 쓰기라는 행위가 있고 난 다음의 행위에 해당한다. 언어활동의 네 가지 특성은 이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말하기는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그 정도가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예로부터 사람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 네 가지를 꼽았다. 생김새는 물론 몸가짐을 먼저 보는 것도 사람이 먼저 눈에 띄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이 말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다. 이 말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몽땅 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다음이 글이다. 이 글에는 문장이란 뜻과 함께 글씨의 뜻도 함축되어 있다. 지금이야 컴퓨터시대라서 육필이 주목받지 못하고, 필체 나쁜 것이 흉이 되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 사람이 쓴 글씨[필체]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담겨 있다고 보았던 시대도 있었다. 그 다음이 판단력이다. 삶을 단순화해서 정의한다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 선택의 바탕을 이루는 게 바로 판단력이다.

 

인물을 평가하는 네 가지 기준 중에서 두 가지-말과 글이 사람됨의 핵심이 된다는 뜻이다. 언어활동이 사람됨에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막중한지 짐작케 한다사실 말에는 한 사람의 전인격적 질량이 함축되어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이성을 갖게 되었다.”(Herder)는 주장으로 미루어 본다면 언어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과 언어가 우리의 사람됨을 창조하는 것은 서로 불가분의 필연적 보충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학자나 언어철학자들의 견해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몸만이 아니라 언어로 채워지는 정신의 발달과 함께 가능한 것임은 우리가 겪은 삶으로 입증한다. 그렇게 말로 채워진 됨됨이라야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된 사람의 자세를 갖출 수 있을 것이며, 말의 길을 잘 살려가는 것이 내면이 함께 성장한 사람의 표상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때에 따라 사람을 만난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도 바로 그 선택 사항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말을 하게 된다. 일정한 주제나 목적을 내걸고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한 목적이나 주제의식이 없이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나누는 말하기를 방담放談이라고 한다.

 

그저 마음 편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생각나는 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방담이다. 친지들과 만나서 나누는 방담처럼 즐거운 게 또 있을까. 무슨 말을 해도 흉이 되지 않고, 어떻게 표현해도 책을 잡히지 않는 말하기-방담은 그렇게 마음 편한 말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백이 아니라면 말하기는 최소한의 불문율을 지켜야 한다. 규칙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말이 살아서 사람됨에 기여하고, 관계의 밀도를 더욱 친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좌중에서 나이가 많거나, 모임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 불문율과 규칙을 스스로 먼저 지켜야 한다. 그래야 방담이 삶의 길에 놓인 힘이 될 수 있다.

 

그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내가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 내 말만 주구장창 고집하게 되면 참석자들은 흥미를 잃게 된다. 특히 지위가 높은 사람이 말할 때 유념할 대목이다. 듣되 들은 말에 대한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 추임새는 판소리를 들을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말을 나눌 때도 추임새는 말의 길에 활력을 불어넣는 양념이다. 특히 연장자는 연하자의 발언에 뜨악해하며 반응을 삼가는 것이 어른다움이라고 여기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낡은 유성기판을 되돌리는 것은 아닌지,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연세가 지긋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같은 에피소드를 만날 때마다 되풀이하는 경우, 듣는 사람이 민망한 노릇이다. 또 하나는 길게 말하지 않는 것, 말할 기회를 독점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 발언권을 잡으면 ‘~하고, ~하며, ~하면서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려는 화자들을 이따금 만난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 짬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길게 말을 이어가는 것은, 길지 않은 우리 인생을 짧게 단축시키는 망발이다.

 

크고 작은 모임에서 방담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살려가는 말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말하고 듣는 이 간단한 규칙만 지켜도 가능하다. 개인끼리의 사적인 방담이야 그 자리만 끝나면 그만일 수 있다. 그러나 주제와 목표를 정해둔 공적 말하기에서도 말의 주제를 놓치고 횡설수설하는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이 더 큰 문제다.

 

그 폐해는 온 국민들의 몫이 되어 두고두고 역사의 화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의 씨앗이 함부로 뿌려지는 참혹한 시대를 우리는 눈 번히 뜨고 지켜보고 있다이들의 말을 받아 전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오죽하면 기레기(기자+쓰레기)’고 하겠는가. 우리는 바로 지금 기레기 전성시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공적인 담화가 사적인 방담만도 못한 언로를 그래도 믿고 따라야 하는 문맹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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