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관치(官治)시대에 사는가?
우리는 아직도 관치(官治)시대에 사는가?
  • 김규원
  • 승인 2023.04.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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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410, 꽃샘추위가 어깨를 움츠리게는 했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어서 낮에는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농부는 농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일년지계 재어춘(一年之計 在於春)이라 했던가? 거리는 봄기운에 활력이 넘치고 여인들의 옷차림이 벌써 가벼워졌다.

  11일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19193.1운동 이후 각지에서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있었으나 상하이에서 411일 이동녕을 주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민주 정부를 수립 선포한 임시정부를 정통으로 인정했다.

  1945년 해방으로 김구 주석이 귀국할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 새로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졌다. 그러나 미군정의 입김 아래 수립된 정부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일제 잔재를 껴안은 이승만으로 인해 관치시대로 이어졌다.

  요즘도 신문 기사를 보면 민관합동이니 민관학 공동 연구라느니 하는 문구를 흔히 만난다. ()은 지난날 임금으로부터 받는 벼슬에 붙는 호칭이었다. 우리는 불행스럽게 조선이 망하고 일제 치하에서 일본 왕이 내린 벼슬을 달고 나온 총독 이하 관리(官吏)들의 지배 아래 살았다.

  그러다가 해방되어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는데도 일제가 남겨준 행정조직과 공무원들의 명칭을 그대로 이어받아 썼다.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이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초대 대통령은 미군정의 입김에 따라 독재자 이승만에게 돌아갔다.

  이승만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친일 세력을 응징하여 민족정기를 일으켜 세웠어야 함에도 외려 반민족특별위원회 위원들을 체포하여 친일 세력을 비호하였다. 일제 치하에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들이 모두 중용되어 친일파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했다.

  자연스럽게 정부조직도 일제의 방식을 따라하게 되었고 법령과 행정 법규도 거의 일제 강점기의 것을 준용하거나 그대로 베껴 썼다. 그들에게서 배운 자들이 장악한 정부이니 그들의 것이 편리했고 답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려온 행정제도와 직제가 오늘까지 이어져 아직도 사무관(事務官), 서기관(書記官), 이사관(理事官)이라는 직제가 쓰이고 있다. 직제만 아니라 공무원들의 생각도 자신들이 관리(官吏)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직책을 관직(官職)이라고 알고 있다.

  관()은 임금이 내리는 벼슬을 일컫는다. 나라의 법령에 사무관 이사관이라는 직책을 정하고 있는 자체가 문제다. 국민이 선출하는 선출직 단체장들도 자신들을 일컬어 목민관(牧民官)이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 단체장들로 구성한 목민관클럽이라는 것도 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에 따라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규칙이 만들어져 운영되는 조직에서 일하는 자들이 관리(官吏)일 수는 없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공직자의 귀감(龜鑑)으로 여기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국민은 다스리고 가르칠 대상인 백성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다. 세상이 온통 임금의 것이던 시대에 임금의 은혜를 전하고 먹이고 입힌다고 생각하던 대상이 아니다. 각자가 경제 주체로 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나라의 근본이다.

  선거 때에는 종이라도 되겠다고 비대발괄하듯 읍소하지만, 표를 얻어 당선하면 세상이 모두 제 것인 듯 마구 흔들고 명령하는 정치는 주인에 대한 배신이다. 이런 모든 행위가 너나없이 일꾼의 자리를 벼슬로 착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언젠가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노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임금님이라며 큰절을 올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노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도 대통령을 임금처럼 생각하고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노인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단체장도 성주(城主), 원님, 관찰사(觀察使)라고 떠받드는 마음들을 갖고 있다. 노인들은 단체장만 아니라 고위 공직자도 지난 시절의 관리라고 생각하며 대우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그렇게 받들어야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생활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인식을 얼씨구나 받아들여 습관처럼 주민들 위에 군림하려 들고 권위를 세우려 드는 공직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선거는 일꾼을 뽑는 절차일 뿐, 지도자나 관리를 뽑는 행사가 아니다.

  그런데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나 표를 주는 주인들이 모두 선거를 통해 일꾼을 고르는 게 아니라 관리를 선출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선거에 나서서 당선하면 바로 태도가 돌변하여 지시하고 군림하는 선출직들의 행태가 이를 증명한다.

  자신에게 표를 준 주인들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나라의 정책도 주인의 뜻에 부합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처럼 당연한 사리를 모르는 체 당선자가 국민이 준 권력을 개인의 생각대로 마구 쓰는 행위는 배신이다.

  이런 행동이 쉽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선거를 통해 지난날의 벼슬을 차지하기 경쟁이라고 착각하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이 준 권력은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셰력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일은 사후에 많은 문제를 불러왔다.

  대통령 이하 선출직 공직자들이 본연의 위치를 찾아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국민이 편해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공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사유화하거나 남용하는 일이 반복되는 관치시대를 끝내야 한다.

  선거는 일꾼(머슴)을 뽑는 일이다. 대통령(큰 머슴)을 비롯하여 모든 선출직이 국민에게 국민에 충성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국민의 뜻과 다른 짓을 저지르는 일을 끝내려면 그들이 차지한 자리가 벼슬()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국민이 준 새경(봉급)을 받는 머슴이고 맹세한 대로 충직한 일꾼이어야 한다. 권력을 장악하여 그 힘으로 주인을 겁박(劫迫)하는 머슴의 행동은 역천(逆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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