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 신영배
  • 승인 2023.03.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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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지난 2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어이없는 굴욕외교에 대해 <절체절명의 때에 읍소하오니>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와 함께 성명서를 냈다. 

사제단은 성명서에서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 그리고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극우들의 망동妄動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역사적 면죄에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아낌없이 보따리를 풀었지만 빈털터리로, 그것도 가해자의 훈계만 잔뜩 듣고 돌아왔다. 

무례한 처신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통령이지만 굴종 굴신으로 겨레에게 굴욕과 수모를 안긴 죄가 너무나 무겁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윤석열 정부가 청사에 길이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고(2022.8.29.) 이태원 참사로 퇴진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에도 먼저 우리 생활방식을 뜯어고치자며 기대를 접지 않았으나(2022.11.14.) 오늘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한다.”라고 했다.

성명서는 그 이유 3가지를 들었다. 대통령이 조상들이 대한독립을 외친 3.1절 아침에 “우리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고 지적하며 일본의 사죄나 배상을 요구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며 ‘제3자 변제안’을 내놔 헌법을 위반하고 민족정기를 더럽혔으며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했다.

첫째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전범기업들의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배상토록 판결한 확정판결을 무효화했다고 지적했다. 명백한 사법권 침해요, 헌법 수호 책무를 망각하고 헌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강제노역에 끌려가 시달린 이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이라는 지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서 한평생 한을 품었던 노인들의 팔을 꺾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통치권에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권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

셋째, 아무 상관도 책임도 없는 우리 기업들이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물도록 하느라 팔을 비틀었다고 적시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마구잡이로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지정할 권한을 주지 않았음을 적시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직권남용이라고 정리했다.

성명서는 또, 대통령의 머리 조아림에 완승한 일본이 “한국, 징용배상 확실히 실행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훈계와 함께 “강제 동원은 없었다. 이미 끝난 문제”라고 못을 박은 일본의 적반하장을 나무랐다.

사제단 성명서는 덧붙여서 그러한 대통령의 굴욕외교에 대해 “미래 향한 진정한 극일의 시작” “주권과 국익 차원에서 내린 용기 있는 결단” “대통령의 결단은 지고도 이기는 길, 나는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고 환호하는 자들이 있음을 탄식했다.

성명서는 또 이런 굴욕외교를 칭송하며 용비어천가를 부르듯 환호하는 언론도 지적했다. “강제 동원 배상안 확정, 한미일 안보협력 속도 붙나” “방일에 이은 방미로 한미일 3각 협력체계가 한층 견고해질 것” 등의 발림소리를 대서특필한 기사를 적시했다. 일본에 나라를 내줄 때 ’을사오적‘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고 짚어내기도 했다.

성명서 후반에는 “전략-공권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오남용하며 사죄도 사과도 하지 않고 사사건건 진실을 감추고 남을 탓하며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깨고 전쟁 불사에 핵무장까지 주장함으로써 긴장을 고조시키며 극소수의 특권 유지를 위해 남녀노소 각계각층을 벼랑으로 내몰며-중략- 그는 ’헌법준수, 국가보위, 평화적 통일과 자유, 복리, 민족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을 심각하게 어겼다. 역사적 퇴장을 명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양심을 지닌 시민과 믿음을 가진 형제자매가 힘을 모아 역사의 현장에서 만날 것을 호소했다. 시민들이 이 움직임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74년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구속을 계기로 태동하여, 1974년 9월 26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순교자 찬미 기도회’에서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의 발표와 함께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1시국선언을 통하여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 헌정 회복, 긴급조치의 전면적인 무효화,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서민 대중을 위한 경제정책 확립을 요구했다. 군부독재에 과감히 맞서 싸우며 많은 성직자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굴하지 않고 투쟁했다. 특히 전주교구가 거의 주도하다시피 투쟁에 앞장섰고 이 나라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다.

사제단은 창립 후 지금까지 모순된 현실 안에서 행동하는 신앙인의 양심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70-80년대 군사독재하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의 횃불로서 역할을 받아 안으며 많은 사제가 3·1 민주구국선언, 5·18 광주 민주 항쟁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특히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제하의 성명서 발표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70-80년대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80년대 말부터는 통일운동으로, 90년대 들어서는 교회쇄신운동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였다. 

2002년도에는 살인 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 평화 단식기도회를 열어 억울하게 희생당한 미선이 효순이의 넋을 기리고, 불평등한 소파 개정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2003년에는 새만금 갯벌과 생명 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의 65일간의 기나긴 여정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

2004년에는 사제단 30주년을 맞아 500여 명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와 금강산에서 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했으며,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14일간 단식기도와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이번 성명서는 20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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