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천지大明天地라는 말의 어둠
대명천지大明天地라는 말의 어둠
  • 김규원
  • 승인 2023.03.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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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10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독하고 끝장에 이렇게 썼다

소설 읽는 재미는 픽션이 논픽션으로 읽힐 때다

그럴싸했다

 

삼백예순날 삼백예순곳 칼을 맞아도 죽지 않는 사람

그래도 죽겠다며, 파란 피를 수혈중이다!

글도 끝내 그 명줄 끊어놓고야 말겠다는 검객동일체

그렇게 살겠다며, 빨간 피를 흡혈중이다!

 

비유를 뽑아 비수처럼 찔러대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빨간 칼의 후예들

무뇌작가 논픽션은 픽션으로 읽혀서 재미가 1도 없다

 

-졸시21세기 독후감 -내 서정의 편파성1전문

 

인류가 누리는 삶의 양상은 문명화의 정도와 비례한다. 문명이란 인간이 누리는 사람다운 삶의 수준에 대한 척도를 말하는 듯하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의 삶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은 눈에 훤히 보이고, 몸이 스스로 반응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십 리건 백 리건 걸어서 왕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세월을 지나서 이제는 시내버스 단 한 승강장의 거리도 탈것을 이용하려 든다.

 

나 땐 말이야, 초등학교를 몇 십리 산길을 걸어서 통학했던 말이야!”하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여겨지지만 그런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신문명은 어떤가? 초등교육만 받아도 큰 혜택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인문학 열풍시대라고 해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은퇴한 뒤 평생교육을 지속하며 인문학에 열광하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지적 호기심을 충전시켜 노년이 되어서도 정신문명의 혜택을 더 누리겠다는 시대가 아닌가. 대중은 무지몽매(無知蒙昧: 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움)하다고 치부하려 했던, 소위 지식인 계층이 따로 있다고 여겼던, 고정관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모두가 지식인이요, 모두가 인문학의 대가들이 되어 가는 중이다. 그들이 모두 지성인이 되어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물질문명이나 정신문명이 꽃을 피우는 21세기다. 소위 문명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말 그럴까? 지식으로 머리는 커졌지만, 그 지식이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하는 인성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지식인은 풍년이되 지성인은 흉년이 아닌가, 의심이 가는 현상이 국내외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형국이다.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 아주 환하게 밝은 세상)라고 한다. 무엇이 환하고 밝아서 사람들은 이 세상을 그렇게 여기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멀쩡한 이웃 나라를 침공해 공동주택에 미사일을 쏘아대니 무고한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희생된다. 대명천지에 이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듯이 1년을 끌며 사람이 죽어 나간다.

 

세계의 지성은 어디로 갔으며, UN은 어디에서 무슨 꿍꿍이를 셈하는가? 대명천지에 강대국은 약소국을 이렇게 침공해도 되는 것일까, 그럴 수 있다는 듯이 세계의 양심 세력은 무기력을 탓하며 절망한다.

 

나라 밖이야 우리 힘이 미치지 않으니 그렇다고 치자. 나라 안은 어떤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샤먼의 주문이나 점괘에 따른 것인지 손바닥에 자를 쓰고, 이를 버젓이 21세기 문명인들에게 보여주던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대명천지에 이럴 수 있는 것이냐고, 게임은 끝났다고, 대부분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럴 수 있다는 듯이 21세기 문명인들은 무지몽매하다고 여겼던 구시대 사람들의 행태를 그대로 따라서 자에게 표를 주었다. 샤먼의 주문이 이렇게도 정통할 수 있을까!

 

그래도 기왕 맡겨진 임기나마 나라의 기강이 바로서기를 바라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을까? 그 소중한 임기 5년 중 1년을 온통 정적의 죄를 찾아내는 데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환하고 밝은 세상을 가능하게 했던, 민주의 힘 삼권분립이 무색하게 되었다. 새로 등극한 왕은 정적만 제거하면 자기들만의 대명천지가 될 것이라는 점괘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이 나라를 이렇게 어둠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 신통력(?)이 놀랍기만 하다.

 

소설은 픽션이다, 허구다, 꾸민 이야기다. 이런 전제를 갖고 있지만, 읽다 보면 꾸민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고 마는 소설이 있다. 물론 좋은 소설이 그렇다. 허구는 좋게 말한 것이지 실은 거짓말인 셈이다. 물론 문학적 허구[거짓]은 진실을 좀 더 맛깔스럽게 드러내려는 허용된 작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된 소설을 읽는 독자는 이야기의 사실감에 몰입하다 보면 눈물짓고 분노하며 안타까워 한숨짓는 등, 사람다움의 정감을 만끽한다.

 

그런데 거짓이 아니라고, 사실이라고, 진짜라고 아무리 왜장쳐도 사람들은 그 말이 거짓이라며 믿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도 육하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며 공인받은 거대 기구인 언론의 논픽션이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누군가의 픽션을 받아쓰며 논픽션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누가 언론을 믿겠는가?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논픽션이지만 재미가 하나도 없는 픽션이 아닌가, 의심하고, 불신하고, 멀리한다.

 

시뻘건 칼을 쥔 사람이 한 사람을 죽이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거짓의 칼로 찔러도 그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피는 끊임없이 푸른 피를 수혈받기 때문이다. 논픽션을 픽션으로 읽으며 대명천지의 어둠을 걱정하는, 선량한 독자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

 

사실을 위장한 픽션[거짓]5천 년 역사에 겨우 이룩한 환하고 밝은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어 버린다. 그래서 그런다. 이제는 대명천지라는 말이 암흑천지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변형된 것이라고. 어둠 속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꾸며지고 실행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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