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부르는 격포항 등대 낙서
사랑을 부르는 격포항 등대 낙서
  • 김규원
  • 승인 2023.01.19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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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격포항 채석강 옆을 지나가는 긴 방파제,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등대 하나등대에서 바라본 서해는 지구의 끝을 향하여 끝없이 펼쳐져 나가는 꿈의 세계다.

오래전부터 이 항구를 떠나 꿈의 세계로 달려 나갔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항구를 떠날 때의 꿈을 얼마만큼 이루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다시 격포항으로 돌아왔을까.

여기에서 바라보면 위도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코앞이다. 홍길동이 아니더라도 율도국의 이상향을 꿈꾸어볼 만한 곳이다.

이곳에 서 있는 등대는 그냥 등대가 아니다. 다른 등대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배에 불빛을 비춰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 격포항의 등대는 사람을 향해서도 손짓을 한다. 다른 등대는 항구를 향하여 돌아오는 배에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이 등대는 떠나가는 사람을 향하여 손짓한다.

등대의 벽을 온통 까맣게 장식하고 있는 낙서들. 하나같이 애타고 속 타는 사랑의 고백서다. 등대의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낙서는 모두가 애절하다. 넓은 마음을 소유한 바다의 탓일까. 부드러운 바람 탓일까. 다른 곳의 낙서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

큰 글씨로 너를 사랑해하는 것을 비롯하여 ‘00, 나 너 사랑해’, ‘우리 영원히 변치 말자’, ‘네가 그리워서 이곳에 다시 왔어’ ‘너랑 둘이 왔을 때는 바다가 온통 기쁨이었는데 혼자 찾아온 바다는 온통 슬픔이네.’ 등 간단한 낙서부터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꽤나 길게 쓴 사랑의 고백서도 있다.

등대의 위층과 아래층을 빙 돌면서 읽은 사랑의 고백서는 어떤 소설보다도 진지하고 재미있다. 그중에서 사인펜이 아닌 연필로 희미하게 써진 낙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까 등대를 한 바퀴 돌 때는 눈에 띄지도 않았는데 따가운 햇살을 피하여 그늘진 곳에 서 있노라니 그때에야 눈에 들어온다.

“To 오빠. 오빠와 함께 왔던 이곳에 오늘은 나 혼자 왔어. , 오빠 떠나보내기 정말 힘들었어. 오빠를 잊고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언젠가는 돌아올 거지? 그때까지 나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빠, 꼭 돌아와 줘.”

그래 돌아오너라. 그래야 이 글을 쓴 사람도, 이 글을 읽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

정말 가슴이 아파요. 여기에 글을 쓸 때 저 아이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 사람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같이 갔던 사람이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한다. 마음씨 착한 사람. 낙서 하나에도 가슴 아파하는 그는 참으로 마음 여린 사람이다. 그와 친구 되어 있는 나도 행복한 사람이다.

여기에 쓰여 있는 낙서의 바람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곳에 사연을 쓰면 이루어지는 도깨비방망이 등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격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연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엄청나게 큰 연인들의 항구가 될 것이다. 어쩌면 격포 공항이 생길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통통통!”

작은 고깃배도 지나가고 위도를 향하여 지나가는 큰 여객선도 지나가는 격포항은 맑은 하늘 아래 아직도 안개가 덜 걷힌 정오의 바다다. 방파제 여기저기에 낚시꾼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곳에 아까부터 한 시간도 넘게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만은 나중에 혼자 와서 등대에 낙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대에 기대어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저 긴 머리 여인도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옆에서 바다가 아닌 그 여인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한 남자도 행복한 사람이다.

그들도 저 등대에다 한 마디 남기고 갈까? 그들은 등대에 낙서하지 않을 것이다. 낙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온 세상이 다 그들 차지인데 무슨 낙서가 필요하랴. 행여 일이 잘못되어 먼 훗날에 이 등대를 혼자 찾아왔을 때, 그때 낙서를 하리라.

정오를 지나 오후로 접어드는 격포항. 푸른 바다와 하늘이 수평선 끝에서 하나로 만나고 있는 일심동체의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하늘이 서로 사랑하면 이상적인 연인이 될까? 저렇게 수평선 끝에서 꼭 안고 있는 저들을 누가 떼어놓을 수가 있으랴. 행여 띠구름이 심술을 부려 수평선을 가리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해본다.

오늘도 격포항 등대는 온몸에 수많은 사랑의 고백서를 안은 채 하얗게 바다를 지키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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