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 새 아침을 맞으며
기묘년 새 아침을 맞으며
  • 김규원
  • 승인 2023.01.0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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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임인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아침을 맞았다. 새해 특집 글을 쓰겠다고 이것저것 뒤져보고 생각해봐도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적어도 새해 아침이니 희망과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뒤적거려도 마땅히 쓸 말이 없다.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무겁기만 한 가슴으로 새해를 말하려니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하다. 12월 하순 들어 내린 눈이 여태 녹지 않고 아직도 하얗게 버티고 있는 일처럼 한 해를 보내고 맞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치라는 단어가 점점 더 혐오스러운 느낌을 더해가고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 이런 나라에 정의 공정 상식 따위의 언어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알 길이 없다. 국민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도 분간할 수 없다.

 

신문에 내년부터 달라지는 제도나 법 규정, 공공요금 등이 나열되었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면 조금이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아니올시다였다. 다만, 나이를 생일 기준 출생일로부터 계산하여 헛나이를 세지 않는 것으로 위로 삼을까 하는 정도뿐이다.

경제 관련 항목을 보면 2주택자 종부세 중과 폐지, 종부세 비과세 기준이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높아지는 일, 법인세 인하 등 살만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조세제도가 눈에 뜨이고 앞으로 전기료와 수도료 공공요금 등이 오른다는 기사가 보였다.

소득은 물가 인상률만큼 줄어들어 실질소득은 폭망 상태인데 물가와 공공요금은 오르지 않는 게 거의 없다. 거기에 이자율이 크게 올라 가계 빚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수입 대부분을 바쳐야 하는 가구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일에 여야가 짬짜미로 합의하고 소속 의원들을 설득하느라 진을 뺀다는 대목에선 헛웃음만 나왔다. 맨날 서로 잡아먹을 듯해도 뭔가 잇속이 있는 일에는 금세 합의하고 끝나면 서로 형님동생 사이로 돌아간다는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었던 모양이다.

부자만 좋아지는 정책에 서민을 위한 배려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새해다. 최저임금이 올라서 봉급을 더 받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영세 사업주는 그 인상분만큼 사람을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세계 경제 위축으로 소비가 줄어 수출이 급감하여 무역적자는 472억 원에 이르고 제조업 가동률이 계속 떨어지는 불경기가 상당 기간 계속한다는 전망이다. 대기업들도 긴장하여 허리띠를 조르고 있다. 봉급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살아남아야 내일을 볼 수 있으니 서로 눈치 보기에 바쁘다.

 

무엇하나 밝은 전망이 없고 답답하기만 한데 나라 정치는 점점 더 마이 웨이로 치닫고 있다. 연말 대사면이라는 이름으로 묵은 시대의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대거 사면되어 나왔다. 전 정권에서 지극히 조심스럽던 사면권 행사가 퍼주듯 만발했다.

내 손으로 처벌을 요구하여 벌 받은 사람들을 잘못된 관행에 따른 범죄였다며 다 풀어주었다. 기소를 지휘한 검사와 사면한 대통령이 같은 사람인데 국력을 하나로 모아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사면하고 복권시켰다.

그들을 수사하고 재판하며 투입한 인력과 시간, 막대한 서류 등은 한낱 휴지로 화해 사라졌다. 대통령의 힘이 그 정도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그들을 재판하여 형을 부과한 판사들의 심경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사면권에 제한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반성하지 않은 자들을 사면 복권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이름 지어 이처럼 마구잡이로 풀어준다면 기소하고 재판하는 자체가 헛짓이다. 82억 원의 벌금을 떼먹은 이명박만 잘난 사람이 되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형기 5개월을 남기고 사면을 거부하는데도 사면하면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복권은 해주지 않았다. 다음 총선에 나서지 못하게 막은 일을 두고 일부에서 쪼잔하다는 소리까지 나왔지만, 복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두고 일부에서는 그 말도 맞긴 하지만, 그보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해였다고 평했다. 송두리째 부정하고 잡아떼며 억지를 부린다는 뜻이다. 이런 일도 더는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나라 정치가 다시 80년대쯤으로 되돌아간 듯 철저히 끼리끼리 편 먹기 정치로 돌아갔다. 내 편 아니면 국민도 아니라는 생각인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막가는 판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력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내 편이 될 범죄자들을 몽땅 풀어주었다면 반대하는 사람들도 용납하여 제대로 국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내 입맛대로 나라 정치를 꾸려갈 수는 없다. 반대하는 자들의 의견 속에 내게 좋은 처방이 다 들어 있다.

 

이런 불편한 일들이 이어지던 임인년이 가고 새해가 밝았다. 결코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할 일들이 거듭 일어난 흉측한 호랑이해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우고 새해엔 좋은 일, 희망을 느끼는 일들이 거듭하기를 바란다.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라던가? 하얀 토끼가 아니라 검은 토끼의 해여서 은근히 불안한 느낌도 있다. 지난 검은 호랑이해에 너무 불편한 일들이 일어나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이었던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음흉한 검은 호랑이보다는 약삭빠른 검은 토끼이니 해코지는 덜할 것이라고 나약한 기대를 해본다. 점점 주인인 국민이 위축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주인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여 바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어렵고 불편한 나라 형편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남을 살피는 작은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연말연시다. 계묘년에는 나라에 좋은 일만 가득하고 편견들도 사라져 마음 상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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