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꽃
저승꽃
  • 전주일보
  • 승인 2022.12.2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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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주름 깊은 얼굴에 다문다문 핀 꽃 저승꽃은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다. 손등의 거뭇거뭇한 반점 또한 저승꽃이다. 저승사자가 올 시간에 맞춰 피는 꽃에는 향기가 없다. 한번 피어난 저승꽃은 만장이 펄럭일 때 비로소 진다. 한 목숨 지는 일 또한 꽃 한 송이 떨어지는 일과 진배없다.

떠날 사람은 두려워서 저승꽃 앞에 무릎 꿇고, 남아있는 사람은 저승꽃을 보고도 덤덤하다. 저승길을 밝히는 노을은 붉기만 해 서산으로 기운다. 바람에 떨어지지 않고 흐르는 물에도 씻기지 않는 꽃도 꽃인데, 벌 ? 나비는 찾아오지 않는다. 생의 말미에 찍은 검은 낙관 같은 꽃을 보고 염라대왕은, 착한 사람을 먼저 잡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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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꽃은 검버섯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저승의 문턱에 닿아서야 흐드러지게 핀다.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 찢기고 갈라지고, 벗겨진 육신에 핀 거뭇거뭇해서 서러운, 서러워서 애달픈 꽃이다.

이승을 떠나는 날 담담히 밟고 갈 저승꽃에서 지난했던 삶의 지문과 당당하고 지엄한 자존과 어깃장 나게 살아온 시간의 지층을 읽는다. 사는 날까지 뜨겁게 살다가 떠날 때는 짜디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속절없이 지는 차갑게 핀 꽃이다.

육신에 남은 한 방울의 물기마저 끌어올려 핀 저승꽃은 바라볼수록 서럽다. 황혼으로 물든 얼굴 곳곳에 핀 저승꽃은 남은 생을 오롯이 녹여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라는 염라대왕의 마지막 배려다.

삶이 곤곤할수록 저승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아무나 겪지 못할 삶을 세상이란 용광로 속에서 부수고, 갈고 녹이고 태워서 피워낸 당찬 꽃이다. 꽃은 피고 진다. 봄이면 목련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궁화꽃이 피고 가을이면 국화꽃이 피고 겨울이면 눈꽃이 핀다.

소금꽃도 피고 지고, 사람 꽃도 피고 진다. 피고 지는 것이 만물의 여정旅程이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는 저승꽃이 만발하고 저승사자들은 검은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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