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은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랑의 눈금이다”
“설렘은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랑의 눈금이다”
  • 김규원
  • 승인 2022.12.12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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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좋은 삶-87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그건 아마도 저울 바늘이 부산하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

힘차게 심장을 잘라 저울 위에 올려놓으면

바늘은 한 자리에 멎기 전까지

두 근 반 세 근 반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요동을 친다는 말

심장을 어디다 쿵 하고 올려놓고 싶어

눈이 멀 것 같을 때

놀랐다 홧홧해졌다가 몸을 식히느라 부산한 심장을

흙바닥도 가시밭도 아닌 그저 저울 위에

한 몇 년 올려두고

순순히 멈추지 않는 바늘을 바라보고 싶다는 말

 

-이병률(1967~.충북 제천)저울전문

  시의 소재는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심각하고 중요한 내용을 담아내려면, 소재도 그렇게 심각하고 중요한 데서 촉발하는 것으로 아는 선입견이 문제입니다.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지닌 문제일수록, 의외로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이나 언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실은 이런 발견마저도 시적 용법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좀 색다르고 멋있어 보이는 말을 들으면, “와우~ 참 시적인데!”라는 말을 합니다. 또는 일상 방담 중에 표현의 뉘앙스가 좀 색달라서 듣는 이의 심금이라도 울릴라치면 , 시 쓰시네!”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합니다. 이런 각성이 바로 시는 같은 사물-언어라도 시적 정서로 새겨듣거나 풀어 말할 때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 쓰인 것처럼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긴장된 일을 앞에 두고 있거나, 두렵고 떨리는 사건을 당하게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의 정확은 표현은 아마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일 것입니다. 이 말을 비틀어[fun] 말함으로써 말하고 듣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fun의 뜻에는 재미있는, 즐거운, 놀리다, 신나는, 장난, 까불기, 농담, 놀려대다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근두근두 근 반 세 근 반으로 비틀어서 말함으로써 말하고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려 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부적인 시인 기질이 농후한 듯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저울'입니다. 이걸로 미루어 보건대 '두근두근''두 근 두 근'으로 보려는 장난기가 발상의 빌미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은 우리네 전통 도량형기의 단위 중에서 무게를 드러내는 단위입니다. 1근은 미터법으로 고치면 대략 600g에 해당하지만, 언중들이 아직도 돼지고기 600g 주세요.”보다는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를 편하게 발언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의 뿌리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이 시는 그런 말의 즐거움을 통해서 "살면서 놀라는 일 좀 없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순순히 멈추지 않는 바늘을 바라보고 싶다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설렘'마저 거절하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도 자심한 '사람 놀라게 하는 사건'들만은 더 이상 우리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겠지요.

 

  그 대신 두근거리는 심장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무게를 가늠하느라 저울의 눈금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가능할까요? 여기에서는 시적 화자의 진술로 그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눈이 멀 것 같을 때"가 바로 그런 상황일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A.Dante)가 그럴 것입니다. 눈이 멀 것 같은, 영혼의 넋을 빼앗을 것 같은 베아트리체를 먼발치에서 만난 순간 단테의 심장은 바쁘게 요동을 쳤을 것입니다. 어찌 단테뿐이겠습니까? 봄날 전원에서 그네 타는 춘향을 발견한 이몽룡의 심장도 단테 못지않게 방망이질했을 것입니다. 그런 만남 이후에 벌어지는 저들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노라면 이런 심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요동치는 '설렘'이 멈추지 않기를 누군들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심장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순순히 멈추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모양입니다. 저울의 눈금이 심장의 떨림을 그대로 받아내느라 바르르 떨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설렘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나 봅니다. 사랑의 설렘에 가슴 두근거리는 사람들은 말입니다.

 

  그나저나 심장이 박동하는 이 소중한 설렘을 요즈음에는 바운스 바운스한다며, 어디 출생 신분도 알 수 없는 말들로 외쳐대야만 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어 속상합니다. 아마도 바운스는 바다 건너온 bounce를 말하는 듯합니다. 그런 낯선 말들을 통해서 자신의 유식을 뽐내고 제 나라 것을 업신여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행태일 것입니다.

  ‘눈이 멀 것 같은기막힌 만남의 순간, 저들의 심장이 어떻게 뛸지 궁금합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저울에 올려놓은 채 영원을 노래하려는 시심을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다면 뿌리 없는 말들로 우리의 영혼을 흐리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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