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시들어도 꽃이다
꽃은 시들어도 꽃이다
  • 전주일보
  • 승인 2022.12.0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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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누이야 꽃이 진다
꽃피는 봄날은 가고 향기로운 여름은 가고
그 많던 꽃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어떤 꽃은 하늘나라로 가서 
하늘꽃이 되고
어떤 꽃은 지옥으로 가서 
불꽃이 될 테지만
이승에서 목을 꺾여보지 않은 꽃은 
꽃이 아니다
죽어서 다시 꽃으로 피지 않으면 
진짜 꽃이 아니다
어두운 밤에 서로에게 손을 뻗는 꽃들을
별들만이 위로한다
어쩌란 말이냐 정말 어쩌란 말이냐
시든 꽃은 
땅 한 평을 찾아드는데
누이야 꽃은 시들어도 꽃이다

꽃은 피든 지든 꽃이다. 오랜 흔적이 묻어있는 벽에 시든 꽃 한 묶음이 걸려있다. 꽃이 태양을 바라보던 지향 습관이 인공 불빛으로 향한다. 꽃은 지는 일을 알 리도 없으련만 봉오리를 열면 향기부터 머금는다. 벽에 걸려있는 마른 꽃다발에 장미와 안개꽃이 어우러져 문득문득 가슴에 스며든다. 피는 날 향기 진했던 꽃이 시들어도 저렇듯 아름답다. 꽃은 시선을 받아야 꽃이다. 메말라버린 꽃이 향기를 낼 수 있다면 그 꽃은 살아있는 것이다. 꽃은 시들고 바람에 흔들려 떨어져도 사람들은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잊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르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시간 따라 시들어 떨어지면 그때 꽃이 진다고 말한다. 꽃도 서럽다. 그늘이 있고 상처가 있고, 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꽃도 사람 같아서 서로 바라보면서도 그리워한다. 그래서 꽃이 피면 사람들은 좋아한다. 죽어서 천국으로 간 꽃은 다음 세상에 하얀 꽃으로 피고, 지옥으로 간 꽃은 다음 세상에 검은 꽃으로 핀다고 한다. 꽃은 시들어도 반드시 다시 필 날이 있지만, 사람은 늙어지면 다시 젊을 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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