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울음은 아이의 언어다”
“아이의 울음은 아이의 언어다”
  • 김규원
  • 승인 2022.11.2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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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좋은 삶-84

 

 

우는 애들을 달랠 순 없어요. 난 머릿속이 출렁거릴 때까지 울죠. 애들이 날 달래지 않으면 애들이……애들이……익사할지도 몰라요.

 

애들은 정말 겁도 없어요. 물속에서 노래를 해요. 엄마……엄마……엄마……저 뻐끔거리는 입들을 좀 보세요.

 

표면으로 올라온 물방울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어요. 공기가 가시처럼 찌르나 봐요. 애들이 너무 오래 물속에서 놀고 있어요.

 

-김행숙(1970~. 서울)우는 아이전문

우는 아이물속에서 놀고 있다는 발상이다. 하긴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온통 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터이다.

우선, 그 태생 자체가 바로 물[양수]로부터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어서 대기 속에 던져짐으로써 아직 물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다. 아이들이 우유를 시시때때로 먹어야 하는 것도 물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하루라도 물에 씻기지 않고서는 제대로 발육할 수 없는 물 자체의 존재가 바로 아이다.

허나 어찌 이런 됨됨이만으로 아이를 로 볼 것인가. 아이가 물인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엔 바로 물의 속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바로 아이의 존재성에서 유발된 것은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이=로 보아야 하는 이유를 물의 덕성에서 찾아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물성이 바로 아이와 물이기 때문이다.

노자의도덕경8장에 그린 내용이다.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의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있으면서도 이에 만족하는 데 있다. 그런 까닭으로 도에 가깝다 하리라.”(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노자가 말한 물의 7가지 덕은 다음과 같다. 물처럼 자리매김을 잘해야 한다[居善地], 물처럼 깊고 고요해야 한다.[心善淵], 물처럼 어질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與善仁], 물처럼 거짓 없이 말할 줄 알아야 한다[言善信], 물처럼 무위(無爲)’유위(有爲)’를 모두 잘해야 한다[正善治], 물처럼 능력을 잘 발휘해야 한다[事善能], 물처럼 때에 맞춰서 움직이고 멈춰야 한다[動善時]가 그것이다.

또한 큰 덕을 갖춘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이 된다.”(上德不德,是以有德) “큰 덕은 억지로 하지 않는데도 되지 않는 일이 없다.”(上德無爲 而無以爲) 낮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더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는 역설을 생각하게 된다.

이 밖에도 물의 덕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풀기도 한다. 첫째, 물은 온갖 생물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를 사랑[]이라 한다. 둘째, 물은 스스로 맑아지려는 자정력自淨力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를 의롭다[] 한다. 셋째, 물은 낮은 곳을 전부 채운 다음 흘러가기 때문에 질서가 정연하다. 그래서 이는 예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물은 지형지물에 따라 저돌적이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흐른다. 그래서 이를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일곱 가지 이건, 네 가지 이건, 물의 덕성을 모두-두루 갖춘 존재를 찾자면, 아마도 지상에는 물 그 자체와 나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며, 인간에게는 바로 어린아이그중에서도 갓난아이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울음밖에는 아무런 언어를 가지지 못했고, 울음밖에는 그 어떤 무기도 지니지 못했으며, 울음밖에는 생존을 위한 수단를 쥐고 있지 못한 존재가 바로 갓난아이. 이런 이유로 유기체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어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바로 아이다.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서 무참하게 스러져 가는 현대-21세기 문명사회를 바라보아야 하는 심경이 애들이 날 달래지 않으면애들이익사할지도모르겠다. 참으로 부끄러운 시대를 함께 하고 있다.

갓난아이들의 울음은 그들의 언어다. 한밤중 갓난아이가 운다. 어미는 젖을 물려보기도 하고, 이마를 짚어보기도 하며,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한다. 할 수 있는 온갖 손길을 아무리 다해도 소용이 없다. 지친 엄마는 울상이 된다. 아가야, 도대체 뭐라 하는 거니? 엄마는 아이와 함께 손을 놓고 울음 운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건넌방에서 아이 울음을 보다 못한, 아니 듣다 못한 할머니가 조용히 건너오신다. 할머니는 포대기로 아이를 둘러업더니 안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건넌방으로 건너다니며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노래인지 사설인지, 구음인지 시조창인지. 아이의 울음이 할머니의 가락에 묻혔는지, 할머니의 읊조림이 아이의 울음을 삼켰는지, 아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고, 눈물만 글썽이든 엄마도 어느새 조용히 잠이 든다.

아이는 물이다. 아이의 울음은 모든 이의 눈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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