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구두
아버지의 구두
  • 전주일보
  • 승인 2022.11.0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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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왔을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세월에 부대끼고 짓눌려
구두창은 부르텄고 옆구리는 터졌다 
아버지의 늙은 구두는 당신의 구두가 워커이기를 바랬다
워커는 세상의 길 위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갈 수 없는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길을 워커로 통했다
아버지는 수 많은 날들을 열나게 구두를 닦아댔지만
워커는 커녕 백구두도 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구두는 결코 
광나게 길 한 번 걷지 못했다
병상 아래 아버지의 구두를 바르게 놓으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서성이는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따라 가 본다
어느 길은 자갈길 같기도 하고 어느 길은
환한 대로 같기도 하다 그 길을 걸어오며  아버지는 
오랜 불면의 시간들을 더듬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구두를 보면서 상념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아버지의 구두는 내 밥이요 내가
이 땅을 버틸 수 있는 두 발바닥의 뿌리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외출할 때 신는 구두는 반짝반짝 빛났다. 어머니가 손질한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나시는 아버지의 구두코는 파리가 앉으면 낙상할 것만 같았다. 세월이 물처럼 흘러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버지의 구두만큼은 선명하다.

나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빛나는 구두를 신고 싶은 꿈이 생겼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이다. 댓돌 위에 가지런한 아버지의 구두를 보았다. 뒷굽이 닳고 옆구리가 터진 낡고 더러운 구두였다. 그 날따라 아버지의 구두가 왜 그리 슬퍼 보였는지 그때는 몰랐다.

철이 들고 나서야 그날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구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길거리표 운동화가 댓돌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에 나가시는 아버지의 옷차림이 운동복이었다.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고 퇴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IMF 사태가 터진 그 시점이다.

아버지도 20년이 넘도록 다니던 회사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둔 것이다. 가족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파트 경비를 하던 아버지에게 왜 이리 용돈이 적냐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좀만 참으라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아내가 닦아준 구두를 신고 출퇴근을 한다.

아버지의 삶에 대보니 아버지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사람 구실 하면서 살고 있다. 중년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알 것 같다. 얼마나 긴 시간을 혼자서 외롭게 견디면서 살아오셨을까?

운동화 끈을 조여 맬 때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시리다. 아버지에게 구두 한 켤레 사드려야겠다. 어느 동인지에 실린 생활문 한 편을 읽으면서 밤하늘의 별이 된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용서하소서, 아버지 지난날의 불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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