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 애도 기간을 넘으며
‘10.29. 참사’ 애도 기간을 넘으며
  • 김규원
  • 승인 2022.11.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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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MBC가 이태원 참사를 ‘10.29.참사라고 부르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태원의 이미지에 타격도 우려되고 날짜를 명시하여 잊지 않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공감하고 찬성한다. 그래서 글 제목도 그렇게 달았다.

애도 기간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정부의 행태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그 아픈 일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래서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시선을 돌려보려 했다.

그러나 너무 한심한 정부와 그 구성원들의 행태가 연일 드러나 분통이 터지고 자꾸만 눈물치 솟아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한심한 자들이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우리 국민은 편히 발을 뻗고 잠들 수 없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한심한 자들에게 그처럼 중요한 일을 맡겼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국무총리라는 자가 외신기자들과 이번 참사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면서 농담을 하고 웃음 짓는 사진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외신기자들의 눈에 한국 정부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불문가지이다.

행정안전부장관과 경찰청장, 지역 경찰서장이 대통령이나 총리보다 늦게 사태를 파악했다는 내용도 보도됐다. 그 가운데 50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이임재 용산서장만 대기 발령되었다. 제일 아래 책임자만 꼬리 자르기로 처리하고 뭉갤 심산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윤 대통령은 매일 희생자 빈소에 들러 조문하면서 최근에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대동하고 다녔다. 조금도 잘못했다는 표정이 아닌, 불만 가득한 얼굴로 빈소에 끌려다니는 행안부 장관을 보며 국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함부로 추측할 일이 아니지만, 절친이라는 이 장관을 빈소에 대동하는 건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보이도록 하려는 의미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겠다는 메시지가 아닌지 싶다.

생떼같이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 윤 대통령이 불교 법회와 기독교가 서초구 백석대 캠퍼스에 만들어준 한국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예배에 참석하여 무한책임을 느낀다는 등의 말을 했다. 그러나 아직 그는 한 번도 대국민 성명 등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인사 문제, ‘뉴 욕 발언등 국민 앞에 사과할 일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이번 사태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자 종교단체 행사 참석 형식을 빌려 애매한 책임론으로 넘어가려는 건 아닌지 싶다. 국민 앞에 머리숙이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낙마한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과거 정권에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반문할 만큼 나름으로 인사에 자신을 보였다. 그런 결과가 이런 참사로 드러났다. 중요 보직에 앉은 사람들은 5개월 만에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윤 대통령 부부의 멘토라던 천공 스승이라는 작자는 이번 젊은이들의 희생을 두고 아이들의 희생, 엄청난 기회 온 것이라는 뜻을 유튜브 채널에서 말했다. 도대체 사람이 할말이 아닌 말을 마구 내뱉었다. 그런 말이 아닌 소리를 버젓이 할 수 있는 자신감은 무엇인가?

그는 또, “좋은 기회를 자꾸 준다.”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렇게 큰 질량으로 희생해야지 세계가 우리를 돌아보게 돼 있다.”라고 윤 정부에 기회라고 부추겼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알기는 하지만, 멘토 등의 주장은 과장된 이야기라고 했다는 보도다.

5촛불행동이 남대문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도로를 메우는 촛불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5천 명이라 했고 한국일보는 2만 명이라고 보았다. 촛불 행동 측은 부산과 광주, 군산 등지에서 동시에 시위를 벌인다며 10만 인파가 모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윤석열은 퇴진하라’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라는 등의 손팻말과 촛불을 켜 들고 행진했다. 또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청년 100여명이 ‘6:34’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에 나섰다. 1029일 첫 112 신고가 들어간 시간이 오후 634분이었다는 항의였다.

그들을 인터뷰한 오마이뉴스는 그들을 구하지 못한 건 일선 경찰과 구급대원의 잘못일까?” “세월호 참사를 통해우린 무엇을 배웠나, 그 어느 곳에도 시스템은 없었고 책임 있는 자들의 무책임만 있었다.”라는 청년들의 말을 보도했다.

권력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막는 일에만 충실하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정부 내에 가득하다. 권력의 눈에만 들려는 자들의 생각에 국민은 만만한 존재인가? 골목에 몰린 인파에 겁나서 경찰에 신고했어도 출동할 경력이 없었던 당일 상황이다.

대통령이 이사할 공관 빈집을 지키느라 200명 경찰이 동원되고 서초동 사저를 지키고 광화문 촛불시위를 촘촘히 경비하느라 경찰이 투입되어 출동할 기동대가 없었다. 대통령 지키는데 거의 모든 경력이 투입되어 국민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번처럼 주최자 없는 행사 등의 군중 집결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 정권의 매뉴얼이라고 한꺼번에 파기하고 없애버려서 이번 사태에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애도 기간도 끝나고 참사 희생자들 장례도 거의 치러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희생자들의 아까운 목숨으로 이 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래도 이 정권을 옹호하는 자들이야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만으로는 화산처럼 타오르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이 생각하기에는 더 없이 훌륭한 사람일지 몰라도 국민은 너무 한심한 작자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음을 잘 안다. 이번을 계기로 그들을 모두 내치고 쓴소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작은 촛불이 뭉치면 세상을 온통 불살라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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