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 없으면 책임이 없다?
주최 없으면 책임이 없다?
  • 신영배
  • 승인 2022.11.02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이 나라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실이 멀지 않은 장소에서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서로 밀치다가 밟히고 짓눌려 목숨을 잃었다사람들은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분개했다. 대형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지진이나 천재지변이 난 것도 아닌데, 멀쩡한 도로에서 사람들끼리 부딪혀 넘어지고 깔려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나흘이 흘렀다. 이 기간동안 대통령과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등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 모두가 주최측이 없는 행사여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다가 여론에 떠밀린 듯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차례로 사과를 했다

정부의 대응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그야말로 나쁜 정부다. 주최측이 없으면 더욱더 신경을 써서 행사를 관리했어야 맞다. 세상의 이치는 법리를 떠나 상식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주최측이 없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식의 최고 책임자의 변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시절, 발생했던 대형사고를 기억해보면 19771111일 이리역 열차 폭발사고를 비롯해 김영삼 정부 때인 19933월 부산 구포역 열차 전복사고에 이어 610일에는 경기 연천군 예비군 훈련장에서 폭발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이어 726일 전남 해남에서는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했으며 3개월 후인 1010일 전북 부안 위도에서 출항한 서해훼리호가 임수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292명의 희생자를 냈다다음해인 199410월에는 서울 성수대교가 순식간에 붕괴됐다. 이어 충주 유람선 화재사고(1024),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127)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4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 폭발사고, 2개월 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6), 괌 대한항공 추락사고(1997),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사고 원인은 모두가 공권력의 안전불감증과 직무태만으로 인한 인재였다. 사고 때마다 정부는 원인을 파악한 후 대책마련을 통해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했다.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는 안전과 관련된 각종 법령을 강화했다. 지난 사고들은 산업화와 현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안전사고였으나 이번 이태원 참사는 디지털 세상을 구현하는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오롯이 정부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일인데도 주최측이 없어 정부가 개입할 수 없었다는 식의 당국의 태도를 누가 용납하겠는가?

주최측이 없으면 공권력은 타 행사보다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전 모니터링을 통해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옳다. 더욱이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매년 같은 장소에서 실시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공권력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런 사고없이 성료했다. 다만 변한것은 거리두기 해제와 노마스크,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그날 목숨을 잃은 156명 가운데는 서울의 생동감을 보겠다고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스티븐(20) 군도 있었고, 일본에서 온 메이(26)양도 있었다그들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프랑스, 우즈베키스탄, 호주, 베트남 등 14개국의 젊은이들 26명이 희생됐다. 희생된 외국인들의 수만 보아도 그날 이태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미 세계 각국이 한국을 주시하고 한국을 동경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터인데 그 많은 인파가 몰려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양보를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지방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에도 반드시 경찰관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도 하고 사람이 많이 몰리면 길을 막아 혼잡하지 않게 한다.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경찰은 군중 통제에 능숙해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없었다며 인터뷰한 시민의 말을 인용해 그날 시위가 벌어져 경찰력이 대부분 그쪽에 배치돼 있어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경찰을 배치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날 현장에 137명의 경찰이 배치되었다고 했는데 인파가 그렇게 붐벼도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거나 흐름을 바꾸려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상당수가 마약단속 임무를 띈 사복경찰관이었고 교통통제와 유도를 담당한 경찰관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경찰국까지 신설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했다는 말을 보면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참사 후에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우려할 정도의 인파는 아니었고 광화문 시위로 경찰 추가 투입이 어려웠다라고 말해 모두의 분노를 샀다.

좁은 도로에 사람이 걷기 어려울 정도로 몰렸는데 우려할 정도의 인파는 아니었고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배짱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뒤에 이어서 광화문 시위로 경찰 추가 투입이 어려웠다라는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광화문 시위,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에 경력을 촘촘히 배치하느라 사람이 몰려 사고가 나는 일쯤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러더니 사고가 나자 참사 원인을 밝힌다며 500명 이상의 경찰을 투입해 현장에서 사고를 유발한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CCTV를 모두 분석하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촬영한 영상을 뒤져서 사건 발생을 주도한 인물을 찾아내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밀어를 선동한 누군가를 찾아내 사건의 책임을 몽땅 씌워도 현장을 방치한 정부와 서울시의 책임은 하나도 줄지 않는다.

한 국무총리는 이상민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자 많은 반론이 있다.”라고 방어막을 쳤다. 대통령실은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은 없다"라며 이 장관을 두둔했다.

더욱이 정부는 이번 참사를 두고 용어정리를 했다. ‘참사사고, ‘희생자는 사망자로 정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도대체 저마다 책임회피에 바쁘고 정부나 자치단체, 경찰의 능력 밖의 일인 듯, 저마다 닭잡아먹고 오리발만 내미는 이런 무책임한 정부는 여태 없었다

지난 2017년 겨울, 광화문에 수백만의 시민들이 모여 이게 나라냐?”고 질타하던 그 손팻말들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릴 뿐이다. 정부는 몇몇 경찰인사들을 징계하여 책임을 회피하기보다는 떳떳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동시에 참사 원인을 숨김없이 들춰내야 한다.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