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인생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 김규원
  • 승인 2022.10.31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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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좋은 삶-81회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했다.

 

-허형만(1945~ 전남 순천)석양전문

사물이 참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간-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그 해가 바닷가에 있는 소나무에 걸쳤다.-[아마도 부안 변산해양수련원 앞바다에 있는 솔섬이거나, 이를 담아낸 晏道 한택영 사진작가의 작품에서 이런 광경을 봤음직한 풍경이다.] 이 광경이 꼭 화투짝 솔광의 모습으로 유추되고, 이를 받아서 솔광이다!”하고 놀라는 사람의 감수성 또한 놀라우며, 그런 일련의 감동들을 놓치지 않고 이처럼 시의 언어로 형상하여 시적정서를 부여하는 시인의 발상[詩心] 또한 놀랍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쳐보지만, 석양을 받은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물들었듯이,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하듯이, 그렇게 이대로를 외치는 사람들의 연치도 어느덧 석양을 받은 키 작은 소나무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래저래 시는 참으로 사물[자연]과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 시간의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운명의 장난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그림이 왜 마음을 끄는지, 어떤 사람에게 왜 사랑의 감정이 발동하는지, 도무지 [머리로]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럴 때 시도 마찬가지 경지일 것이다. 이 시가 왜 읽는 이의 마음을 끄는지, 이 시에 왜 애착이 가는지, 도무지 까닭을 짐작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저 마음가는대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그게 가장 사람답게사는 길이라는 생각임을 이 시는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닌지.

그래도 석양이란 제목에 마음이 끌린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노을빛에 연유하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시에 그려진 것처럼 석양의 바닷가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것처럼, 인생의 석양도 노을빛 따라 아름답다는 것은 아닌지. 하긴 필자는 인생 석양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는 데 항상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종말이네, 종언이네 하며 인생 노년을 끝남-종언이라는 비극으로 설정하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모든 끝이 비극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끝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하고 또한 보낸다. 오히려 그 끝을 축하하고 시원스러워한다. 이를테면 병역의무를 수행하느라 피 끓는젊음의 한 대목을 고스란히 바친 뒤 맞이하는 병영생활의 끝에 얼마나 환호작약하던가!

병영생활이 고생스러웠기 때문에 병역의무를 끝낸 것을 기뻐한다면, 인생살이라고 해서 어찌 기쁨만 있었겠는가? 고생으로 말하자면 어찌 군대 생활 몇 년을 인생의 그것과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백팔번뇌의 질곡을 거쳐서 비로소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년[석양]이 기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도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인생에도 그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쉼이 곧 끝이요 종언이라면 마땅히 기쁜 마음으로 인생 노을을 맞이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학교들의 졸업식 풍경은 어떤가? 지금은 변형되고 많이 사라졌지만 졸업을 맞이한 학생들이 교복을 찢고 온몸에 밀가루 칠을 하는 등 학업의 끝을 만끽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자못 심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 과정을 일단 무사히 마쳤음을 자축하는 것,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성숙한 새 출발의 기쁨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그들의 행위를 감상하였다.

인생학교도 마찬가지다. 인생행락 백년이다. 기껏 살아야 백년이지만, 그 세월을 허투루 살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사람살이-인생학교에서 통용되는 나이 셈법이다. 그 셈법이 재미있다. 6학년 1반은 61세요, 7학년 2반은 72세며, 8학년 3반은 83세를 일컫는다. 이런 나이 셈법이 재밌는 것은 사람이 그저 해만 바뀌면 저절로 나이를 먹는 존재가 아니라, 뭔가 배우고 익히는 삶이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온 것은 아닌지, 해석하며 필자는 혼자서 즐거워한다. 그렇지 않은가? 학교생활의 용어를 빌려 나이를 셈하는 속셈이 그럴 것이리라.

더는 늙지 말고 이대로를 외치는 심정도 그렇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저렇게 건배사를 날리는 사람들이 먼저 알고 있다. 그래서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고,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하다않은가! 석양을 즐기는 취기 속에 끝-종언이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이음이 될 수 있음을 볼그족족한 취기 속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다. 늙는다는 것은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완성을 향해 결실하는 것이라고,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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