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계절
감사의 계절
  • 전주일보
  • 승인 2022.10.3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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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가을 하늘이 푸르고 마음이 풍성한 것은

뒤꼍에서 감들이 단내를 풍기고

문밖에서는 사과들이 주렁하기 때문입니다

 

감을 보고 사과를 보면서

이 가을이 풍성함에 감사합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을을 나눠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오곡백과가 가득한 황금들녘에서

밀레의 만종소리가 들려오고

노부부의 하루를 마감하는

감사의 기도가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도 선명합니다

 

그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몇 개의 감을 선물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에게

한 바구니의 사과를 보내면서

 

화해하고 사과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한 마음이 되어 반짝이고 풀벌레 노랫소리 곱습니다

이 가을을 감사합니다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는 비참하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이재민과 태풍에 희생된 가족들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러나 무심한 것은 자연이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하늘은 맑고 날씨는 가을을 더욱 여물게 만든다. 농촌의 들녘은 누렇게 익어가고, 가지마다 알차게 영글어 가는 과일들. 수확의 결실을 맛보는 날, 땀 흘려 고생한 보람의 진실을 얻을 수 있다. 가을 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큰 한 장의 도화지. 살랑 부는 바람은 물감이고 흔들리는 꽃들은 풍경이다. 가을에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산과 들에 나가면 멋진 그림들을 머리에 담아올 수가 있다. 코스모스가 반기는 가을 길을 걸으면 떠나간 옛 친구가 돌아오고 돌아선 님이 헤이~’ 손을 흔들며 등 뒤에 서 있을 것만 같다. 수수 모가지에 붙은 참새들이 부는 바람에 놀라 일제히 창공으로 솟아오르면 누구라도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산비탈 밭둑에 핀 들국화는 찬 서리에도 꿋꿋하다. 먼발치에서 바람에 춤추는 억새는 산으로 가신 할아버지의 자화상이다. 바라보는 하늘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가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어느 가을날 떠나간. 죽어도 잊지 못할 그 사람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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