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우 상가에 조문을 갔었다. 연도煉禱를 끝내고 식사하는데, 수육을 먹다가 이가 부서지는 듯 ‘우두둑’하며 통증이 왔다. 콩알만 한 연골이 박힌 줄 모르고 무심코 깨물었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이튿날 서둘러 치과에 갔더니 흔들린 이를 빼잔다. 그래도 나이에 비해선 아직도 치아가 좋은 편이니 조심히 오래 쓰시라 하면서 안심시켰다.
팔십을 넘기니 성한 곳이 없는 것 같다. 고혈압, 당뇨, 협심증 등 내과에서 처방받는 기본 약을 제외하곤 한동안 뜸하더니, 작년부터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안과, 치과를 추가로 드나들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심하지 않아서 그때만 지나면 잊어버린다. 치아는 삼시 세끼 식사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치(健齒)를 오복 중에 하나로 치는가 싶다. 그동안 이가 좋다고 함부로 써왔는데, 절반이나 망가지다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오미크론이 다시 세상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일상으로 만나고 정담을 나누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알아보면, 십중팔구 요양병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흔하고, 넘어져 허리나 골반을 다쳐 입원해 있다는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나 역시 작년 가을 정기 검사 때 하지정맥에 문제가 생겨서 운전대를 놓았다. 게다가 혈관성 기저질환 때문에 치매 주의보까지 받은 터다.
남자 평균 기대수명(80.5세)도 넘겼고, 아직은 내 발로 걷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치매 주의보를 받은 이상 내 건강을 자신할 수 없다. 가끔 어지럼 증세가 나타나거나 건망증이 심해가는 현상 앞에선 도리가 없고, 자신이 없어서다. 그래도 매일 같이 정성스레 약을 먹고 걷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노래를 배우는 일이 나의 즐거움이다.
‘장수長壽의 저주詛呪’는 오늘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 제목이다. 7월 26일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 OECD 보건통계’에 따른 2020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년으로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기대수명은 그해 태어난 아이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연수를 뜻한다. 남성 80.5세, 여성 86.5세로 각각 예측했다. 지난 2010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80.2년으로 38개 국가 중 21위였으나 10년 새 3.3년이 연장되면서 순위가 껑충 뛰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내 경제 대국으로 진입하며 의료 혜택이 좋아지고, 교육 수준과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 지식이 크게 높아진 결과이리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20위권 밖이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상위권에 들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 같다.
이에 반해 늘어난 기대수명만큼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강 수명’은 66.3년에 그쳐 2012년 조사(65.7년)에 비해 거의 개선되지 않은 점이다. 건강 수명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기간을 뺀 수명 기간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가’에 초점을 두고 산출한 지표다. 기대수명 83.5년 가운데 평균 17.2년은 병으로 고생한다는 뜻이다.
나는 2006년 8월 초, 전주 근교의 오봉산을 오르다 심근경색으로 J대학교병원을 거쳐 현대아산병원에서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고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의 기대수명이 79세였기에 80세까지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기대수명 세계 1위인 일본의 경우, 과식을 피하고 운동을 하는 등 일상의 건강관리가 생활화되어 ‘아프지 않은 노년’이 일반화돼 있다”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건강관리 습관이 부족해 장수에 따른 의료비 부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장수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려면 복지 재정에 대한 개혁도 시급하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던 시인의 말처럼 가끔은 아프기도 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다만 적절한 운동과 심신을 안정하는 일상을 위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지 싶다. 늘어나는 수명과 함께 노후 생활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오래 사는 게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는 세상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