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봄’은 새로운 승객의 몫이다”
“어차피 ‘봄’은 새로운 승객의 몫이다”
  • 김규원
  • 승인 2022.08.08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내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 여러분

봄 여름 가을

입구에서 서성대고 계시는

승객 여러분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갈 봄 여름 없이

가을이 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정류장은 봄입니다

 

-차창룡(1966~. 전남 곡성)소화消化전문

시인이 참 짓궂다. ‘소화(消化)’에 대한 <우리말큰사전>의 풀이는 다음 네 가지다. 삭임 얻은 분량을 잘 감당하여 처분함 배우거나 얻은 지식, 기술, 경험 따위를 완전히 익혀 제 것으로 만듦 팔 물건 따위를 모두 팔아버림 등이다. 이에 따르면 이 시가 담고 있는 의미망은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은 이 중에서 아마도 번의 의미를 생각하고 제목을 소화消化로 정한 것이 아닌가, 짐작하려니 참 짓궂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먹은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고 소화의 입구인 식도나 위에서 정체된다면,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아무리 진수성찬일지라도 음식이 입[]에서 식도를 타고, 위장[여름]으로 내려가 마침내, 소장[가을]에서 각종 영양소가 흡수되어야 그 역할기능을 다한다. 그러므로 먹은 음식은 입구에 머물지 말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야 그 기능을 다한다.

그런데 과식으로 고생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포만의 괴로움이 굶주림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 세상의 탈것들은 입구부터 붐비기만 한다. 그 탈것이 무엇인가? 탐욕은 인생의 4계를 망각하는 데서 유발되는 어리석임이라는 것이 시인이 은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다가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빚어내는 현상들이 작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실감한다. 만원 버스나 열차를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나 어찌 만원으로 붐비는 입구탈것뿐이겠는가? 우리네 삶에는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고 정체 현상을 빚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도처에 꽉 막힌 입구에서 끝내는 새롭게 밀려드는 에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는 노릇인 줄 뻔히 알면서도 버티기만 한다.

소화의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 시는 노령인구의 급증을 은유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가을이 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대목을 읊조리면서 필자는 야릇한 미소가 띠어졌다. “사람이 엔간히 살았으면, 이제는 죽을 준비를 해 주십시오라고 채근하는 소리로 들렸다면, 적다고 할 수 없는 내 나이에 대한 자격지심으로만 볼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아마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놓고 말할 수 없을 때, 시적 은유는 참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다.

노령老齡인구가 급증한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신세대의 증가율과 노령세대의 증가율이 반비례하는 데서 오는 역전현상이다. 아니 새로운 세대를 낳으려 하지 않는데[낳을 수 없는데], 어떻게 신생아의 증가율이 노령인구의 증가율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이미 온 봄은 여름을 겪고,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입구]에서 버팅기고 있는 꼴이다. 봄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 겨울 공화국을 이루고 있는 격이다.

이럴 때 신[-운전기사]도 참 답답할 것이다. 아무리 안쪽으로 좀 들어가 달라고 사정을 해도 늦갈이나, 초겨울에서 머뭇거리며 버티는 승객[노령인구]들 때문에 골치가 아플 것이다.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아무리 고담준론으로 설법을 해도, 사랑의 언사로 설교를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다음 정류장은 봄입니다라는 희망의 속삭임이 이미 탈것에 올라탄 승객들의 귀에는 절망의 속삭임으로 들리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이미 이승이라는 탈것에 올라탄 승객들의 계절이 아니라, 바로 새롭게 태어날 신생아-신세대들이 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또한 분명하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어디론가 실려 가는 승객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승은 생의 탈것이기 때문이다. 이 탈것에 올라탄 이상 멈출 수도, 옮겨 탈 수도, 내릴 수도, 잠시 쉴 수도 없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의 탈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겨울로 실어간다. 그러니 운전기사[]의 독촉을 받기 전에, 내려야 할 정류장이라 여기면, 의연하게 내리면 그만이다. 어차피 새로운 승객들의 몫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