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히기와 상처 입기”
“상처 입히기와 상처 입기”
  • 김규원
  • 승인 2022.07.25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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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조용한데 누가 쏘았는지

모를 화살 하나가 책상 위에 떨어져 있다

누가 나에게 화살을 쏜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화살은 단단하고 짧고 검고 작았다

새 깃털 끝에 촉은 검은 쇠

인간의 몸엔 얼마든지 박힐 것 같다

나는 화살을 들고 서서

어떤 알지 못할 슬픔에 잠긴다

 

심장에 박히는 닭똥만한 촉이 무서워진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아파왔다

혹 이것은 사람들이 대개,

장난삼아 하늘로 쏘는 화살이,

내 책상에 잘못 떨어진 것인지도 몰라!

 

-고형렬(1954~. 강원 속초)화살전문

사람의 잘잘못을 꼭 짚어서 말해야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해석하고 적용하는 수준이나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의 인식과 이해, 해석과 적용에 대하여 가타부타 독설을 퍼부을 일은 아닌 것이다. 알고 있는 범주 안에서 상대가 알아들으면 좋고, 알아듣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더구나 다원화 사회에서 일방적 선의의 주장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런 관계를 일찍이맹자(公孫丑章)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大匠不爲拙工改廢繩墨(대장불위졸공개폐승묵), 羿不爲拙射變其彀率(예불위졸사변기구율), 君子引而不發(군자인이불발), 躍如也(약여야), 中道而立(중도이립), 能者從之(능자종지)” [맹자가 말하길] 훌륭한 기술자는 서툰 기술자를 위해 먹물을 바꾸거나 없애지 않으며, 예와 같은 명궁은 서툰 사수를 위해 구율[彀率: 활시위를 당기는 수준이나 방도]를 바꾸지 않는다. 군자(의 가르침이란 것은 마치) 활을 당기되 쏘지 않기에, 화살이 [] 발사될 듯한 상황과 같다. [다시 말해 군자는]방도를 꼭 맞게 하고 서있으면, 따라올 수 있는 자는 따라오는 법이다.

사람의 인식과 이해, 해석과 적용의 수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준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에 대하여 함부로 독화살을 남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소위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서 이러한 일들은 우리 사회는 물론 개인에게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심각한 지경이다.

장난으로 던진 돌팔매에 방죽 안의 개구리는 목숨을 잃는다. 근거 없는 소문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상이 낱낱이 털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순식간에 헛소문-가짜뉴스가 진짜처럼 유통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소위 사회적 소통의 창구로 활용되는 SNS - 개인 방송, 유튜브 등의 매체들이 편리한 수단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매우 위험한 창구가 되고 있다.

나도 화살을 맞은 적이 있다. 아니 나도만이 아니라, 누구나 화살을 맞고 산다. ‘~이 있었다가 아니라, 늘 화살을 몸으로 맞으며 산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한다고 안 맞을 도리도 없다. 문제는 나만 그 화살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화살을 함부로 발사한 주인공이라는 점이 점을 외면하거나, 애써 모르쇠하거나, ‘아닌보살인 척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쏘는 활시위는 언제나 입이다. 그 입을 제대로 잠글 수 없어서, 그 입이 닫혀 있으면 한적하고 외롭고 두려워서, 시도 때도 없이 화살을 발사한다. 그 화살에 무슨 독을 묻혔는지, 그 화살의 촉이 어떤 색깔인지, 그 화살이 어떤 재질로 제작되었는지, 도무지 한번 돌아볼 겨를도 없다. 마치 습관처럼, 마치 밥 먹듯이 수시로 화살을 발사한다.

그래서 입을 닫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를 읽고 써야 한다. 입을 닫는 연습은 그런 소통의 창구를 갖지 않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갖지 않는 비장한(?) 결의를 했다는 사람을 보면 참 경외감을 갖게 된다. 스스로 외딴 무인도에서 살기를 자청한 사람이거나, 깊은 산속 암굴에 홀로 거처하는 수행승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하긴 그 길 말고 입을 닫는 일이 참 어렵기도 하겠다.

시를 쓰고 읽는 일이 입을 닫는 연습이거나, 입을 씻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의 됨됨이가 바로 인간의 말[]을 속세와 거리를 둔 절[]에 가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시를 쓰고 읽는 일은 바로 다른 이를 상처 입히는-화살 쏘는 일을 삼가는 원천적 행위임이 자명하다.

타인을 지적하려고 화살을 날리는 손가락 중 하나는 상대를 가리키지만,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은 화살을 날리는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이 상처를 입는 일이다.

그나저나 상처뒤에는 왜 ‘~입다가 붙을까? ‘옷을 입다은혜를 입다처럼 좋은 표현들에 쓰이는 입다가 제발 ‘[타인에게]상처를 입히고, [자신이]상처를 입는데에는 쓰이지 않기를, 활을 당기고도 쏘지는 말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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