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에서 오는 삶의 풍요로움”
“일탈에서 오는 삶의 풍요로움”
  • 김규원
  • 승인 2022.07.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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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1960~. 서울)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전문

  내겐 주머니[‘지갑은 사치스럽기도 했다]에 넣고 다니는 비상금이라는 게 참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게도 왜 그런 꼽쳐둔 잔돈 나부랭이가 없었겠는가? 그런데도 내 주머니는 늘 비어 있기 일쑤였다. 왜 그럴까, 왜 나는 빈털터리일까? 그렇대서, 내 주머니가 비어있다 해서 가난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좀 더 원활하게 쓸 수 있는 잔돈 나부랭이가 내 주머니 구석 어딘가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심정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내 주머니 가난의 원인을 실감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야말로 푼돈의 용처는 내 손버릇과 관련이 깊었다. 퇴근길에, 혹은 나들이 길에 지나가는 길목이 문제였다. 책방 곁을 스치거나, 꽃집 근처를 지나거나, 또는 음반 가게 결을 지나는 경우가 문제다. 그 가게들은 언제나 내 발목, 아니 손길을 잡아끌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미필적으로 책방에 들르면 왜 그렇게도 보고 싶은 그림, 읽고 싶은 활자, 가보고 싶은 외국, 챙기고 싶은 꺼리,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그럴 때마다 주머니 사정이 허용하는 한 그들을 모셨다, 안았다, 사들였다. 그렇게 해서 <삼성문고>1권부터 발행을 그만둘 때까지 내 서가를 채웠고, <삼중당문고> , 앙증맞고 귀여운 책들을 읽으며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그렇대서 무슨 거창한 독서가나 장서가가 되려는 생각보다는,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읽을거리가 나의 푼돈과 맞바꾸는 주역이 되었다.

  그런 중에도 후세 사람들이 잡지 중의 잡지라고, 그 가치를 칭송해 마지않는뿌리깊은나무는 창간호부터 폐간당할 때까지 고스란히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이런 버릇이 깊어져 훨씬 뒤의 일이지만인물과 사상이란 잡지도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내 비좁은 서가를 떠날 수 없는 책 동무가 되었다.

  꽃집도 그렇다. 왜 그렇게 예쁜 화분들, 그 그릇에 담긴 꽃들이 많은 것일까? 그렇대서 귀족풍이 짙은 대형화분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저 한 점 눈짓처럼 나를 향해 윙크를 보내는 화분들은 내 푼돈과 맞바꾸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다 이사라도 갈라치면, 살림살이보다 이런 잡동사니 화분들이 짐꾼들의 불평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도 그 덕분으로 집안에 철 따라 꽃들이 피어 황량한 세태를 위로받게 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내 주머니 사정을 형편없이 만들었던 오랜 손버릇은 아내의 덕분이기도 하다. 영진설비에 돈 갖다주지 않고, 그 돈으로 노상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자스민 한 그루를 사들였다고 지청구해대는 아내가 있었더라면, 나의 손버릇도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나의 그런 버릇을 특별히 꾸짖거나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렇대서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지버릇 어디 개 주랴?’하는지, 나의 오랜 손버릇에 오불관언이었다.

  이제 세월의 뒤안길에 섰다. 그런 손버릇-내 주머니 사정을 형편없이 만들었던 일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돌아보는 일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내 시간의 주머니마다 차고 넘치는 서정성의 지면들이 가득할 수 있었던 것, 내 삶의 공간마다 그래도 생명의 향기를 소중히 여기는 여백이 있음을 기억하며, 고마워할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가벼운 일탈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현실의 중압감을 버텨내는 중심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그래도 나라면 철부지란 말을 듣더라도, 영진설비에 돈을 갖다주지 못할지라도, 우선 한 권의 책, 한 철의 꽃, 그리고 명곡을 담은 한 장의 CD로 가난을 바꾸며 살고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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