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낳은 비극적 정조의 시”
“전쟁이 낳은 비극적 정조의 시”
  • 김규원
  • 승인 2022.06.13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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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계셔요

인공 때 집 떠나신 후

열한살 어린 제게

편지 한 장 주시고는

소식 끊긴 아버지

 

오랜 가뭄 끝에

붉은 강철 빠져나가는

서녘 하늘은

콩깍지동에 숨겨놓은

아버지의 깃발이어요

 

보내라시던 옷과 구두

챙겨드리지 못하고

왈칵 뒤바뀐 세상에서

오늘토록 저녁해만 바라고 서 있어요

 

너무 늦은 이 답장

하늘 끝에다 쓰면

아버지

받아 보시나요

 

-이근배(1940~. 충남 당진)노을전문

  정형시[시조]와 자유시의 경지를 무시로 넘나들면서도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고 깊은 정조를 형상화해 내는 서정의 경지가 참으로 무던하다. 이 작품의 화자와 온전히 중첩되는 상실의 체험을 지니고 있는 필자에게는 꼭 나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듯 착각하게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한국전쟁>은 오래도록 지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코흘리개시기에 겪은 육친과의 별리가 이제는 화자 또한 노을이 될 경지에 이르러서도 잊을 수 없음은, 그것이 바로 혈육이요,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당대를 거쳐 온 사람들에겐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랬다. 한강 다리가 끊어지기 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지인이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그것도 함께 내려가자는 말에 뭔가 할 일이 남았다며 곧 뒤따라가겠다고 했다 한다. 우리 가족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다. ‘곧 뒤따라 내려가겠다!’는 전언을 무슨 주문처럼 상기하며 아들이, 남편이, 아버지가 곧 나타나실 거라는 기대 아닌 기대를 안고 11020년 수십 년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림의 세월을 견뎌왔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소식은 한강다리가 폭파되어 무수한 피난 행렬이 참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비보뿐이었다. 전황은 날로 위급해지는 통에 생이별한 가족의 소식은 그저 가족들만의 비극으로 묻혀갈 뿐이었다. 다섯 살 꼬마에게 전쟁이 무엇이며,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의 처지를 상상한다는 것은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는 사이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에게 아버지란 이름이 설화 아닌 신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33녀 병아리 새끼들을 홀로 품은 엄마는 엄마대로 시대의 질곡에 그대로 묻힐 수밖에, 다른 도리가 무엇이 있겠는가! 가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버텨내기에 10년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던 모양이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다섯 살 꼬마에게, 엄마는 열네 살 초등학교 졸업반 소년에게, 불귀의 상실을 마저 안기고 병마에 쓰러지고 마셨다. 이 또한 전쟁의 상흔이 남긴 상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산 자는 질기게도 살아냈으니, 산 자나 죽은 자에게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어떤 지엄한 명령처럼 여겨졌다. 아버지의 신화를 지표로 삼고, 어머니의 못다 베푸신 사랑을 노상 슬픔의 원형처럼 간직하고 살면서도 구차하게 밥을 먹고, 어렵지만 학교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당대 현직 교사였던 아버지의 성정이 시인다움이었다는 설화의 끈을 이어가려는 발심이 되었다. 이것이 다섯 살 편모슬하의 아들에게, 열네 살 고아가 된 소년에게, 실려졌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긴 하다.

  어찌어찌하여 아들은 시단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못다 이루신 아버지의 유훈이듯이, 못다 베푸신 어머니의 사랑이듯이 생의 전면에 시인이란 이름을 내세우게 되었으니. 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상처였음은 분명한 일이다. 시인이란 이름을 상처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전쟁의 비극으로 인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시인됨의 사명이 내면에 발아하였기 때문으로 필자는 인식하고 있다.

  아버지가 호흡하신 세월보다 더 긴 나이를, 어머니가 누렸던 연세와 비슷한 세월을 보낼 즈음에 아들은 아버지의 고혼孤魂 만으로 합장하는 어머니의 묘소 앞에 이런 시를 읊어 오석에 시비를 새겨 비극의 징표로 삼았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단 먹이가 될 때/ 자식들은 허기진 짐승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기다림도 노래요 금종일 때/ 시대는 사나운 포성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지는 저녁놀/ 대나무숲 머리칼 쥐어뜯으며/ 문풍지 길게 우는 겨울밤마다/ 얼어 터져 갈라지던 가슴 여울소리// 어머니!/ 아버지!// 앞머리를 긁어도 빨리 오시지 않고/ 뒷머리를 긁어도 늦게 오시지 않던/ 은하를 가는 좋은 소리로만 살아계시는// 금종이십니다!/ 은종이십니다!/ 당신께서는―”<졸시「사랑으로 달게 먹이시고 -芝村 아버지, 金鐘 어머니를 기림」전문>

  “너무 늦은 편지이지만 철따라 오 가는 비바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오석에 전쟁의 비극이 씻기는 날들이길 기대하는 것은, 상처뿐인 가슴을 간직한 시인의 소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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