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브로커 녹취록과 정치 현실
선거 브로커 녹취록과 정치 현실
  • 김규원
  • 승인 2022.06.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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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전주시민회가 10일 선거 브로커 사건 관련 녹취록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상당수 인물의 실명이 공개되고 검은 거래가 이루어진 정황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만일 이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선거를 다시 해야 할 지역이 여러 곳이다.

 문제는 이 녹취록에 나온 지역이나 사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생각과 행동을 일상적인 일처럼 표현한 대화 내용을 보면서 절망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나름 주권을 행사하겠다고 투표장에서 표를 준 시민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브로커 이야기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공공연하다시피 자행된 현실에 소름이 돋았고 퍽 불쾌했다. 더구나 현역 기자가 그 중심인물로 등장한 녹취록이라니 더욱 답답했다. 6.1 지방선거 당선인이 자진해서 접촉한 내용과 국회의원에 건넨 돈의 액수까지 드러났다.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진 이유는 바로 묻지마투표성향 때문이다. 한때 막대기만 꽂아놓고도 민주당이라는 이름표를 달면 당선하는 투표 성향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아울러 기초자치단체와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지역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전주일보가 몇 번이고 공천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민주당 공천을 둘러싼 브로커 암약 상이 드러난 데 대해 조금이라도 책임을 느낀다면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당장 기초자치단체와 의원 선거에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법안을 상정하여 가결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당은 이 사건의 중심에 전북도당의 간부였던 사람이 개입하여 구속된 사실을 시인하고 시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사법 판단이 나온 뒤에 사과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사안이 아니다. 이미 시민 앞에 씻지 못한 상처와 분노를 유발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회가 공개한 녹취록의 여파

지난달 23일 전주시민회와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수십 개 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할 때만 해도 시민들은 녹취록 내용을 소상히 알지 못했다. 대충 짐작에 그쳤던 시민들은 10일 페이스북에 상세하게 공개된 20여장의 녹취록을 보고 경악했다.

녹취록에는 현역 국회의원과 단체장, 시장 당선자가 등장하고 그들과 돈 거래 액수까지 다 나와 있다. 주 내용은 당시 이중선 전주시장 후보가 브로커의 요구를 물리치며 돈을 받지 않고 버틴 상황이다. 이중선 씨는 결국 내용을 폭로하고 후보까지 사퇴하기에 이른다.

녹취록 내용으로 보아 부패한 정치권의 거래를 거부하는 괜찮은 후보가 브로커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사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전주시민들은 좋은 후보를 브로커로 인해 선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여 2명을 구속하고 4명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녹취록의 내용은 이 브로커 사건이 그 몇 사람만 개입한 게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당연히 민주당과 관련 국회의원, 단체장과 당선자 등에 대한 적극적인 확대 수사가 잇따라야 할 것이다.

불법이 개입하여 유권자의 판단을 흐린 선거라면 몇 번이든지 다시 선거를 진행해야 옳다. 어찌했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판단으로 쉽게 검은 손을 잡거나 그런 불법에 접근한 후보의 당선도 무효가 되어야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브로커가 기업으로부터 몇억 원의 돈을 받아 후보자에게 선거자금으로 제공하고 당선 후에 단체장의 권한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이 행위는 심각한 일이다. 국민 주권을 속임수로 왜곡하여 당선하게 하고 위임받은 주권을 나눠 쓰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범죄행위다.

더불어 브로커를 이용해서라도 당선하겠다고 접근하거나 제안을 받아들인 일 또한 국민을 속이는 동조자이며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전북 경찰이 선거사범 수사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은 있지만, 브로커 사건을 확대 수사한다는 소식은 없다.

녹취록을 증거 삼을 수는 없겠지만, 제대로 수사한다면 얼마든지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증거 인멸이 끝난 뒤에야 나서는 형식적 수사로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정황에서도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들을 조사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분노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든 단체장이든 불법에 개입하거나 연루되었다면 철저히 수사하여 흑백을 가려야 한다. 이번 녹취록을 통해 시민들은 전북 정치의 현주소를 새롭게 인식했을 것이다. 정치권이 얼마나 부패하고 허술한 집단인지, 시민들이 얼마나 속고 있었는지를.

전북 정가에 자리를 굳힌 언론, 기업, 정당, 정치인, 사이비 단체까지 망라한 토호 세력이 엄존하는 한 전북발전도 정치발전도 없다. 이번 사건도 녹취록에 등장하는 일부 인물이 토호 세력의 비호 아래 지역 민심을 왜곡하고 입맛에 맞는 인물을 꼭두각시로 세워두고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 브로커 사건의 몸통을 추적하면 그 끝에 토호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전북, 특히 전주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사건에는 반드시 그들이 배후에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움직이고 시민을 속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전북이 달라지려면 그들 토호 세력이 더는 발호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단체장이 아무리 용을 써도 그들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언론의 이름을 빌려 맹공을 퍼붓는 현실을 이겨낼 사람은 없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시민의 응집된 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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