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대선 속 불안한 심사
혼돈 대선 속 불안한 심사
  • 김규원
  • 승인 2022.02.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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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김 규 원/편집고문

  대선 후보 등록이 시작되어 이제 진검승부를 가리는 일만 남았다. 11일 대선후보 토론을 잠시 보다가 TV를 껐다. 보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서다. 어쩌다가 이런 정치마당이 만들어졌는지 답답했고 이런 상황을 유도해낸 세력이 미웠다.

  박정희가 죽고 어수선한 가운데 전두환이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뒤에 세상에 없던 깨끗하고 멋진 나라를 만들겠다고 국민을 속이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선거 토론 방송을 보다가 어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갑작스레 불안한 마음이 가슴을 짓눌러 방송을 더 볼 수 없었다.

  이미 고인이 된 전두환의 망령이, 그 오기와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함까지 저세상으로 떠나지 않고 남아서 자신을 닮은, 또는 자신보다 더한 인물의 정신세계에 스며든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보안사령관으로 독재정권의 어두운 그늘을 지키던 그가 혼란을 틈타 권력을 탈취하여 밝은 세계로 얼굴을 내밀기 위해 한 짓은 계엄령에 반대하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들어 정치판을 엎어버리는 일이었다.

  광주 사건을 빌미로 허수아비 내각을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게 하고 국보위 의장 자리에 앉은 그는 스스로 제 어깨에 별 3개를 더 달아 대장이 되었다. 은근히 진짜 대통령이라도 시켜줄 듯이 앞잡이 세웠던 최규하 바지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통대를 소집하여 체육관 대통령의 맥을 이었다.

  민정당을 만들고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이라는 바지 야당을 만들어 2중대 3중대를 운용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의 정치는 무지스럽고 즉흥적이었다. 그를 따르는 수하들 외에는 믿지 않았다. 조폭 두목 정도의 역량으로 나라를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민물이었다.

  그가 정권을 잡아 한일이라고는 공포정치와 힘을 따라야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처세 방식을 남긴 정도였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그 잘못을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권력을 위해서 국민에게 헬기로 기관총을 쏘아대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 시대의 상황과 오늘의 대선은 전혀 닮은 곳이 없는데 어딘지 그 흐름이 불쾌하고 문득 소름이 돋는 착각이 일어난다. 자칫하면 다시 80년대의 어두운 시대로 회귀할 듯한 불안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한 정치가 재연되고 다시 촛불이 켜지면 촛불을 향해 총구가 겨눠지는 일이 상상되어서다.

 

바른 정신으로 돌아올 때

 

  우리 정치가 어쩌다가 이런 양상을 보이게 됐는지 모르겠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실시간 국민의 여론이 즉각 반응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정치가 달라졌다. 개인의 능력이 정치 여론의 향방에 따라 평가되는 세상이다.

  즉각 반응하는 여론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의미를 잃었다. 반짝하는 여론조사 지수가 영향력이 되고 개인의 능력이 되었다. 유튜브 조회 수가 바로 돈이 되고 팔로워가 많은 자가 스타로 떠오르는 시대다.

  거기에 수없이 조작되는 가짜뉴스가 범람한다. 진정 여론을 조사하는지 조사 결과에 일부 변수를 추가하여 조사 결과를 내놓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조사기관마다 제멋대로다. 작년 하반기에 우후죽순처럼 많아진 여론조사 기관이 7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에도 17개 정도가 전부라는데 왜 일까?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실을 통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ARS 조사 응답 비율이 적게는 1%에 미만이고 많아도 2%를 넘지 않았다. 10만 명에 전화를 걸어 조사에 응한 사람 수가 1,000명 정도라는 여론조사 결과이니 응답한 시기와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조사 결과를 집계하면서 약간의 변화만 주어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ARS 조사와 전화 면접조사, 직접 면담 조사의 수치가 크게 다르고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가 들쑥날쑥이다. 특정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조사기관이 있고 낮게 나오는 기관이 있다.

  이런 지지율을 기반으로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어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이런 사태는 이번까지 마지막으로 다시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 언론이 여론을 부추기고 그 부추긴 여론이 후보 경선에 반영되어 국민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이런 불행은 다시 없어야 한다.

  후보 토론을 보면 1, 2등 후보보다 자질이 나아 보이고 토론을 잘한 후보가 있어도 표는 1, 2등 후보가 몰아가게 되어 있다. 당선 가능성이 적은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심리, 내 표를 받아 당선하기를 바라는, 유력한 후보에 투표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그러나 나 혼자의 그런 생각이 여럿 모여 자칫하면 나라와 우리 모두를 그르치게 할 수 있다. 우리 민주 역사에서 보듯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나라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우리는 잘 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감옥으로 들어간 바로 전 두 대통령이 그랬듯이.

  그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 강바닥을 파헤쳐 물의 흐름을 끊으면서까지 토목공사를 강행한 자와 정부의 딸에게 정치를 맡겼던 여자의 사례를 여실히 보았다. 그런 대통령을 만들어 혼돈을 거들었던 집단이 다시 권력을 잡으려는 획책에도 무덤덤한 국민, 외려 환호하는 심사가 두렵다.

  여론조사에 어떤 응답을 했건, 여태 어떤 성향을 보였든, 과정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최종 투표에서는 내가 표를 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누가 미워서, 어떤 일이 맘에 안 들어서 반대로 투표하는 일은 나와 나라를 불행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위협과 외세의 압력 속에 교묘하게 줄타기를 해야 할 대한민국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뻗어가는 한류의 흐름을 이어 세계가 좋아하는 나라로 만들려면 여러모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선택하고 지켜보며 투표일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제 혼란에서 께어나 본디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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