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곳을 찾아서
한적한 곳을 찾아서
  • 전주일보
  • 승인 2022.02.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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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전주의 동쪽을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동부대로동부대로와 나란히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달리는 전라선 철로. 그 두 길을 따라 함께 달리던 자동차와 기차가 잠시 갈라지는 곳이 아중역 부근이다.

기차는 굴속으로 들어가고 자동차는 신호등에 의해 멈춰 선다이곳 아중역 뒤쪽 마을이 행치(行峙) 마을이다. 사방을 막아놓고 갈 행() 자과 언덕 치() 자를 쓴 것은 또 무언가. 답답하니 언덕을 넘어서 탈출하라는 말인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나갈 데가 없는 소쿠리 같은 곳인데 그나마 터져 있던 동네 앞을 철로가 지나가면서 둑을 높이 쌓아버려 동서남북이 꽉 막힌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네온이 번쩍거리는 아중지역에서 철길 아래로 놓인 길을 지나면 갑자기 시골 마을에 온 듯이 조용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수양하라고 마을 뒤에 암자도 하나 있다.

나는 조용히 생각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이곳으로 찾아온다. 이곳은 집에서 멀지 않고 조용하며 극락암까지 길도 닦여 있어 한 걸음씩 걸으며 사색하기에 좋다한적한 곳은 시내 곳곳에 있다. 작은 언덕이 있는 곳이다. 비탈길이 있어서 고생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오지 않는 곳이다. 용머리 고개 위에도 있고 완산칠봉 옆에 있는 곤지산 아래에도 있다. 전주농고 뒷산에도 있고 화산 자락에도 있다.

시내에는 곳곳에 공터가 있다. 주택지로 닦아놓고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공터엔 콩이며 팥이며 깨와 옥수수가 심어 있는 한가한 곳이다. 나는 가끔 이런 곳을 찾아와 쉬었다 간다. 듬성듬성 집이 들어서 있는 이곳에는 할머니들이 호미를 들고 밭을 매기도 하고 아이들이 텃밭에서 흙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한가해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방으로 자동차들이 정신없이 질주하는 번잡한 곳이지만 이곳은 조용하다. 자동차 시동을 끄고 의자를 뒤로 젖혀 몸을 뉘어 눈을 감으면 만사가 태평이다. 그냥 눈을 감고 누웠다 가기도 하고 잠깐 잠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멋으로 가지고 다니기만 하던 시집을 꺼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가방 한쪽에 넣어 두었던 스크랩한 신문 조각을 읽기도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테이프를 틀기도 한다. 한가하다. 편안하다. 이쯤만 되어도 작은 행복을 읊조릴 수가 있겠다.

전에는 서부 시가지 조성지역에서 이런 기분을 맛본 적이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카풀할 사람을 기다리면서 공터에서 바라본 서쪽 벌판이 한없이 아늑하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출근 방향이 달라지면서 잠시 그런 기분을 잊었는데 이곳 택지개발 지역에서 다시 찾은 것이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온갖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이 한 말이다. 어찌 보면 누구 약 올리는 말이 아닌가. 제 할 짓 다 해 보고 영광과 축복도 다 받은 사람이 헛되고 헛되다고 하였으니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누려보지도 못한 사람은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부럽고 부러우니 모든 것이 부럽도다.’ 해야 할까.

행복이란 어디에 있으며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진위는 어디까지인가. 수백 개의 기업을 거느린 재벌 총수는 기업을 수천 개로 늘리지 못해 심기가 불편하고, 어쩌다 짐승을 한 마리 더 잡은 아프리카의 원주민은 입이 귀에 걸리도록 기뻐하는 것에서 각자의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선진국 사람들이 아닌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후진국 사람들에게서 높게 나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그렇다고 칼 붓세처럼 당장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서라고 말할 수도 없고, 요즘은 왜 무지개가 생기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무지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긴다고 설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에게 맞는 행복이 있을 것이요, 바이든에게는 바이든에게 맞는 행복이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나 큰 행복을 바라랴. 이렇게 아무도 몰래 공터에 와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맛보는 이것으로 나의 행복에 만점을 주고 이런 시간이나마 자주 갖도록 힘써 볼 일이다

행복이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적어도 한적한 곳을 찾아가는 노력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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