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는 말에 웃음꽃을 피운다.”
“‘사랑합니다!’는 말에 웃음꽃을 피운다.”
  • 전주일보
  • 승인 2022.01.24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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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너무도 때 묻은 이 한마디밖에는

다른 말이 없는 가난에 웁니다

 

처음보다 더 처음인 순정과 진실을

이 거짓말에다 담을 수밖에 없다니요

 

한 겨울밤 부엉이 울음으로

여름밤 소쩍새 숨넘어가는 울음으로

사랑합니다

 

샘물은 퍼낼수록 새물이 되듯이

처음보다 더 앞선 서툴고 낯선 말

사랑합니다

 

목젖에 걸린 이 참말을

황홀한 거짓말로 불러내어 주세요

 

-유안진(1941~ 경북 안동)황홀한 거짓말전문

  이 시인에게는거짓말로 참말하기라는 시집이 있다. 2008천년의 시작이라는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황홀한 거짓말이 그 시집에 게재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시집은 이 시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건너짚다 팔 부러지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이 시를 읽은 감상안을 지배한다.

  하긴 사랑 고백은 만고의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랑의 출처가 감정이고 보면, 한 번의 고백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기 시련을 극복해야만 가능할 법하다. 왜냐하면 굴곡이 심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바로 감정아니던가! ‘조석변朝夕變을 지나서, 인간의 감정이란 순간적으로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급변하는 감정을 숨기고 줄기차게 사랑 고백을 유지하려면, 천방지축 날뛰는 감정이성이란 목줄을 단단히 묶어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목줄이 그야말로 썩은 동아줄이 되기 십상인 것이 바로 요즈음 사랑 풍속도가 아니던가. 더구나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대세를 거슬러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처럼 귀한 것이니, 고백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거나, 일구이언一口二言의 비인격성을 내세워 사랑의 언약을, 고백한 사랑을 끝까지 지키라고 윽박지르는 일이 예전같이 쉽지만은 않은 풍토로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니 한 번, 일단 고백한 사랑이 손바닥 뒤집듯 금방 식어버리게 될 때, 그 고백은 거짓이 되기 십상이다. 옛말에 한 시간 기분 좋으려면 이발을 하고, 하루 유쾌하게 지내려면 목욕을 하며, 한 반년 즐겁게 살려면 결혼을 하고, 1년 행복감을 누리려면 새집을 지어라.”고 했다. 출처가 어디이며 신빙성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그저 저잣거리에 떠도는 시쳇말일지라도 행복감은 바로 순간적인 감정의 반영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도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와 만나서 누리는 즐거움이 겨우 반년 지속되다니, 사랑에 목숨 거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꾸민 이야기이리라.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누리는 즐거움[쾌락-기쁨-행복]이라는 것이 결국은 시간의 마모 속에서 소멸하고 마는 것이니, 지나치게 그런 감정의 호사에 치우친 삶을 경계하라는, 반어적 의도가 깔렸을 것으로 믿고 싶긴 하다.

  사랑 고백이 때 묻은 가난이라는 발상에 따라오는 것은, 사랑은 그 됨됨이가 깨끗해야 하며, 풍요 없는 공허함으로 들린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처음보다 더 처음-최초의 사랑을 이 거짓말에다 담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첫사랑의 순결성과 진실성을 이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하~! 그러고 보니 숨넘어가는 울음으로 하는 고백은 그러고 보면 소위 이성의 목줄에 묶어 보내는 공치사로서의 외교 사랑이 아니라, 온몸을 진동시키는 뜨거운 울음 같은 사랑-몸 사랑임을 알겠다!

  그래서 입말로 하는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거짓-위장된 헛말일지라도, 기나긴 겨울밤 홀로 울음 울며 짝을 부르는 부엉이처럼, 아니면 짧은 여름밤 피를 토하듯 울음 울며 짝을 찾는 소쩍새처럼, 절절한 고백을 듣고 싶긴 하다. “사랑합니다!”

  그런 쑥스러운 말을 꼭 입말로 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더구나 살 만큼 살아온 가족 사이에 그런 남세스러운 말을 꼭 들어야만 하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긴 있다. 그럴지라도 인간은 말을 통해 이성을 가지게 되었다(언어철학자 헤르더), “대지는/ 꽃을 통해/ 웃는다(라첼 카슨), 인간은 사랑의 말에 웃음꽃을 피우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다. 설사 거짓말일지라도, 입말일지라도, 고백해 주라는 것이다. 마음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그 말을 들려 달라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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