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강
겨울 한강
  • 전주일보
  • 승인 2022.01.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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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아버지가 자라목을 하고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다. 겨울바람이 아버지의 등을 때린다. 강에는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등을 보이며 떠 있다.

마치 한강을 덮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자잘한 물결들이 얼음덩어리 아래서 올망졸망하다

아버지 
우리 집 겨울은 외풍이 형제들의 삭신을 오그라들게 했지요
아버지의 등에 업힌 막내는 많이도 칭얼댔지요
별들은 지붕위에서 밤새도록 떨었지요
겨울은 참 길었지요

 

#영하의 한강에는 유년의 아버지가 바람에 떨고 있는 잔물결들을 달래고 있다. 꽁꽁 언 겨울과 맞서고 있는 아버지가 흙수저를 들고서 자식들에게 미안하게 떠 있다. 나도 얼음덩어리가 되어 아버지 곁에 떠 있고 싶었다.

강둑에 앉았다. 강물에게 손을 내밀어 마침내 강물의 손을 잡았다. 서늘하면서도 부드럽다. 타월로 얼굴을 닦는 것 같기도 하고, 인절미를 입에 문 것 같기도 했다. 두 손을 꽃처럼 펴자 물은 없고 손바닥만 남았다.

다시 강에게 손을 내밀어 물을 손바닥에 올려놔도 강물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갔다. 강물의 시작은 약한 물줄기들이다. 큰 강이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지천과 계곡물이 모이고 합쳐져야 한다.

수량과 수질 면에서 천차만별인 것들은 자신 특징을 보이며 스스로 자정작용을 한다. 강은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기도 한다. 어느 때는 빠르게 어느 곳에서는 완만히 흐르면서 주저 없이 간다.

장애물을 만나면 맞서는 듯이 부딪치다가 슬쩍 돌아서 자기가 가야할 곳에 기어이 도달하고 만다. 속으로 기쁨과 슬픔과 절망과 고통을 품고서…

강물이 바다에 이르렀다고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작은 물줄기들이 모이고 합쳐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결과보다 과정이 빛날 때가 있다. 바다를 향해 쉼 없이 흐르는 것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혼자서 위대함을 만들어낼 수 없다. 특별한 삶처럼 보여도 결국 함께 흐르는 강물일 뿐이다. 강물은 흐르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강이라는 이름으로 불확실과 조급함을 모아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갈 뿐이다. 다시 한 번 위로를 받고 싶어 야윈 손을 강물 깊숙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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