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는 반려伴侶의 절정기”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는 반려伴侶의 절정기”
  • 전주일보
  • 승인 2022.01.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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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그이가 소파에서

내가 안방에서

한 소금씩 낮잠을 잔다

 

또 때로는

그이가 안방에서

내가 소파에서

한 소금씩 낮잠을 잔다

 

한 순간에

일상을 다 놓아버리고

이리저리 자리 바꾸며

진짜 깨소금 같은

낮잠을 잔다.

 

-공숙자(1940~ 전북 남원)낮잠전문

  시를 말장난이라고 규정한 시인이 있다. “시는 절대적으로 말에 있다. 말에는 온갖 현실의 오물이 묻어있다. 그러므로 말을 제대로 따라가면 현실은 저절로 드러난다. 시에서는 오직 말이 감동을 일으킨다. 시는 곧 말장난이다. 그러나 많이 드러나 있는 말장난은 안 좋다. 말장난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말장난이 되어야 한다.”(이성복시적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비유)

  그러고 보면 사람이 하는 일치고 말장난 아닌 것이 없다. 사람살이에서 가장 절절한 말장난을 꼽으라면 다음 세 가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는 돌잡이 풍경이다. 태어나 1년 된 아이가 무심결에 집어 든 물건에 어른들은 온갖 미래를 갖다 붙인다. 실에는 무병장수를, 쌀이나 돈에는 재벌총수를, 연필에는 학자나 판검사를 임명한다. 어린아이의 장래에 대한 어른들의 간절한 염원일지라도 참 즐거운 말장난이겠다. 둘째는 백년가약을 담보하는 사랑의 맹세 역시 그렇다. 주례 앞에서 검은 머리 파 뿌리를 엄숙히 선언할지라도, 헤어지는 부부의 비율이 날로 높아지는 현실은 불변을 담보하려는 사랑의 서약마저 진짜 말장난이 되는 것 같아 참 쓸쓸하겠다. 셋째는 각종 제사에서 읽히는 축문이나 고천문이다. 이 말들은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자들이, 말 못 하고 들을 수 없는 자를 부르는[招魂] 말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의 말씀들은 떠난 이들을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진지한 말장난이겠다.

  시는 인생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대목들에 대한 말장난이다. 우리에게는 장난을 경박하고 품격 없는 희언戱言으로 지레짐작하려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생명-결혼-죽음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대목들과 관련된 언어들이 말장난이어서 나쁠 것이 무엇이겠는가. 장난이라고 여겨지는 말들은 심각한 문제들을 오히려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이를테면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그 오역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묘비명으로 손꼽힌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이에게 던져줄 수 있는 경구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짧은 경구로도 사람을 크게 감동시킴]은 이럴 때 쓰이는 성어이겠다. 이를 두고 누가 경박하다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장난하느냐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수행 깊은 선사의 게송 못지않다. 짧고 코믹하지만 모든 인생 앞에 놓인 교훈처럼 깊은 울림을 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시가 들려주는 말장난도 참 재미있다. 시에 동원된 말씀들이 재미있고, 시에 드러난 부부의 삶이 재미있으며, 시가 은유하는 삶의 진실이 재미있다. 이만한 재미가 있어야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가훈처럼, 모든 인생 앞에 걸어둘 만하겠다.

  이 작품은 3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은 한 연이나 다름없다. ‘그이와 내가 장소를 바꾸어 낮잠을 잔다는 것. 이 단순한 이야기가 연을 바꾸어 세 번 반복된다. 동어반복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요소는 한 소금씩-깨소금에 있는 것 같다. 낮잠 한 소금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올해[2022] 103세에 이르신 철학자 김형석 옹은 매일 낮잠을 잔다고 한다. 10, 15, 20분 정도의 토막잠이라고 한다. 한 소금의 길이를 이에 견주어보면 이 시의 화자와 시적 대상인 그이 역시 그 정도의 토막낮잠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 낮잠이 깨소금이란다. 신혼부부의 즐거운 삶을 흔히 깨소금이 쏟아진다고 한다. 행복한 삶의 최고 경지를 미각과 후각인 깨소금을 끌어다 고소하고 맛있는 인생을 비유한다. 그런 즐거움이 노년이라고 해서 없으란 법이 있겠는가! 팔십 평생에 이르도록 문학의 자장 안에서 알콩달콩 살아내신 부부의 삶이 한 소금, 또 한 소금 쌓이고 더해져서 소금[]처럼 귀한 존재가 되고, 깨소금처럼 고소하고 맛있는 인생으로 무르익었을 법하다.

  부부가 잘사는 길[well­being], 함께 곱게 늙어가는 길[well­aging]은 어떻게 사는 길일까? 소파와 안방-내 자리 네 자리가 따로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평안한 무아無我의 경지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할 법하다. 그 길을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그이]는 문학의 도반道伴으로, 인생의 반려자伴侶者로 살아오고 있음을 들여다보게 한, 이 시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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