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낸 숙제
새해가 낸 숙제
  • 전주일보
  • 승인 2022.01.06 18:0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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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영 숙/수필가
김 영 숙/수필가

부산하게 달려온 신축년(辛丑年) 섣달그믐날 밤/ 숨 고르고 돌아보니/ 내 생은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여름도 아닌 가을도 아닌/모호한 계절에 서 있다 /마음은 건조해 주름지고/ 수다처럼 나이만 늘어나/ 길어지는 한숨 뒤에/ 잃어버린 순수를 둘러메고/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이/ 팽팽하게 맞선 길을 앞에 두고/ 이제 과감히 로그아웃/

언제 내 가는 길 쉬운 적 있었던가?/ 산을 넘으면 강이 기다리고/ 강을 건너면 가시밭길 많았지만/ 그마저 다 헤치며 나가야 할/ 나의 삼백육십 다섯 날의 여백에/ 차근차근 내 삶을 써넣고자/ 첫사랑 만나듯 설렘으로/ 다시 임인년(壬寅年)에 로그인

이렇게 나의 쉰일곱 살을 갈무리하며 새해를 맞았다. 예년 같으면 운암면 국사봉이나 관촌면 운서정에 올라 새날을 맞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로 벌써 2년째 해맞이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마다 배달되는 365일을 허투루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의식을 치르듯 지인이 보내주신 다이어리를 펴고 비장함으로‘365일 늘 좋은 일만 계속되기를’‘작심삼일 되지 말자라고 각오를 적었다. 늘 첫 마음은 거창하게 한해를 잘 살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맘때쯤 돌아보면 후회가 더 앞선다. 그래도 신선한 가슴을 언덕 삼아 생각은 언제나 새해 아침에 매어두고 일 년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겠노라 첫 마음을 띄우며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균형을 맞추며 다짐을 새 다이어리에 이사시켰다.

한 해 동안 나는 얼마나 따뜻한 말을 건네며 살았는가. 어떤 꽃을 보고 어떤 하늘을 보고 어떤 바람을 만났는가? 어느 날의 커피가 가장 향기로웠는가? 사소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으로 스미기는 했는가? 1년의 삶의 궤적을 담은 다이어리를 펴니 여전히 아쉬움과 반성해야 할 것이 더 우세하다. 그중에 제일 걸리는 것이 시어머니와의 관계다.

어머니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시기에 우리 집에 오셨으니 올해로 벌써 3년 차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2주 정도만 쉬었다 가겠노라 하시기에 나는 쿨한 척 안방을 내드렸다. 그러나 나는 이 방처럼 환한 데가 좋다. 저 작은방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못 하루도 못 살겠다.” 하시며 안방을 차지하셨고 나는 삼십 년 넘게 쓰던 방을 내주고 하루아침에 방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텔레비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휴일이면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살다시피 한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거실에 한 대뿐이라는 것이다. 어머니 방에 TV를 한 대 놔드린다고 해도 뭐하러 쓸데없이 돈을 쓰냐며 극구 반대만 하시면서 어머니는 아예 거실 소파에 누워서 종일 TV를 보신다. 결과적으로 거실도 어머니가 차지한 셈이다. 반면 나는 TV도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아니면 잘 안 보는 편이고 나와 어머니는 취향이 달라서 같이 앉아서 보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어머니가 경증 치매를 앓고 계셔서 주중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고 휴일엔 집에서 지내시니 자연스럽게 나는 내 방에서 종일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쌓이는 것은 스트레스요, 오는 건 우울증이다. 자식들 가르치느라 생고생하며 한 고개, 한 고개 삶의 언덕을 넘어서 이제 각자 취직도 하고 시집·장가도 가서 겨우 한숨 고르고 있는 마당에 다시 가시밭길로 가라 하니 내 삶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비록 내 삶의 여백은 채웠지만, 과히 밝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맛있게 익어가는 것이라고 삶에 대한 수필을 쓸 때마다 큰소리 뻥뻥 쳤지만, 뒤에서는 곪아 터지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 어찌 되었든 임인년(壬寅年)에는 이 고민만 해결된다면 반은 성공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어머니 마음도 내 마음도 다치지 않을 현명한 방법을 찾을 것, 이것이 새해가 내게 낸 무거운 숙제다.

어쨌거나 새해가 준 365일이니 삶의 여백도 잘 채워가야겠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내가 쓰든 안 쓰든 한 치 기다림도 없이 냉정하게 가버린다. 불평불만 한들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묵묵히 잘 쪼개 쓰는 수밖에 별수 없다. 살다 보면 나란 존재가 어느 시점에서 점 하나쯤은 세상에 남을 것이고 감성은 늙지 않을 테니 꽃도 좋고, 별도 좋고, 바람도 좋고, 커피도 좋고, 사람도 좋고, 사랑도 좋을 테지. 그래도 세어보니 좋은 것들이 더 많아서 웃으며 숙제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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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겅 2022-01-06 23:09:40
저도 과감히 로그아웃

새롭게 로그인!!

아기새 2022-01-06 21:16:53
시어머니를 모시는게 참으로 힘든일이라던데ㅜㅜ...대단하십니다.!

쭈노 2022-01-06 21:16:50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