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온밤을 꽉 채우는 고향의 맛”
“우즈베키스탄의 온밤을 꽉 채우는 고향의 맛”
  • 전주일보
  • 승인 2021.12.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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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대문을 흔들었다

저녁과 집이 흔들, 흔들렸다

건너 집 아이가 놀러와서

선물로 달을 가져왔단다

어디에 있냐, 했더니

우리 집 지붕 위에 걸어두었단다

무거워서 별도 그 곁에 걸어두었단다

어디서 샀냐고 물으려다

아내가 보내준 찰떡 몇 봉지 들고

평상에 걸터앉아 다리그네를 태웠다

아이가 옆에 앉아 까불까불 다리 그네를 타며

선심 쓰듯 달 값은 그만 두라한다

수캐가 귀를 세우고 달을 쳐다본다

아이에게서 우즈베키스탄 저녁을 받고

나는 고향 맛을 건넸다

 

온 밤이 꽉 찼다

 

-김현조(1960~ 전북 정읍)아이와 보름달전문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다. 시는 참 유용한 문학 양식이라는 생각이 굴뚝같다. 어쩌면 이렇게도 간결한 사연 속에 순결한 마음결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 찬 이야기 나라를 지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음미할수록 침샘에서 솟아나는 맑은 동심에 내 좁아터진 생각의 국경선이 마냥 무너지고 만다. 허물어지고 만다.

그래서 모든 어린이는 시인이고, 모든 시인은 어린이이어야 한다. 그래서 일찍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시인은 노래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시심은 동심이며, 시인은 어린이이어야 한다. 어린이다움만으로는 어림없다. 시인이 어린이라는 것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꿈꾸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어린이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때 묻지 않은 상태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꿈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동심이 퇴색한 어른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바로 아이다움이 없는 전혀 다른 존재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결로는 순수한 원형질의 자연도, 순결한 사람의 마음결도 그려낼 수 없을 뿐이다.

동심으로 가득한, 이 한 편 서정시의 결말은 온밤이 꽉 찼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으로 꽉 찬 것일까?

시적 화자는 지금 멀고도 먼 남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있다. 필자마저도 이 나라가 우리나라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내 가슴이 흔들, 흔들렸다고 느끼는 순간 지척지간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아하, 그래! 그 나라에도 어린이가 있겠지! 그로 인해 온밤이 꽉 찼겠지!’

달이 휘영청 밝은 밤, 그러잖아도 서정적 자아는 향수에 젖지 않고 어찌 버틸 수 있으랴. 그런 찰나 그를 흔들고, 저녁을 흔들고, 집을 흔드는 방문객이 있었다. 바로 건넛집 아이다. 한 아이의 방문이 서정적 자아의 모든 것을 흔들 수밖에 없었음에 필자도 흔들렸다. 흔드는 자는 아이[시인]이지만, 흔들리는 자는 바로 시인[아이]이다. 그래서 동심은 시심이고, 시심은 동심이다. 시인은 지금 만리타국에서 향수에 흔들리고 있지 않는가! 시인은 지금 보름달을 보며 만 리 밖의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는가! “흔들, 흔들렸다는 내재율의 진동이 읽는 이의 가슴을 흔들고도 남았다. ‘아하, 그래! 그 나라에도 보름달은 뜨겠지! 그로 인해 온밤이 꽉 찼겠지!’

건넛집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시인은 깊은 향수에 젖어 있을 것이다. 시인의 정서는 고금동서가 그렇다. 시선 이백(李白)도 달 밝은 밤의 상념이 그랬다.[床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침실 앞에 어른거리는 달빛에/ 혹시 서리가 내렸는가 싶었다/ 고개를 들어 산 위에 뜬 달을 보고/ 고개를 숙여 고향을 그리워하네.](靜夜思5언절구)

그러나 이 시인은 고개 숙여 고향 생각으로 한숨지을 틈이 없었다. 건너 집 아이가 있었다. 더구나 아이는 빈손이 아니었다. 보름달을 선물로, 무겁지만 별도 함께 지니고 왔다는 것이다. 지붕 위에 걸어 둔 달과 별! 상상만 해도 그 정겨운 그림이 손에 잡힐 듯하다. 아이가 시심으로 장군[보름달+별 선물]을 부르자, 시인은 동심으로 멍군[평상에서 다리그네]를 받는다. 보름달이 지붕 위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으며, 별들이 하늘 장막에서 이야기를 쏟아붓는 어린이 극장답다. ‘아하, 그래! 온밤이 두 관객을 위해 꽉 찼겠구나!’

아이가 선물한 우즈베키스탄의 저녁이 고국의 아내가 보내준 찰떡맛과 버무려지면서 달 밝은 밤의 시각 영상이 미각 영상으로 오버랩 된다. 고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정들면 고향이라는 보편적 정서가 또 한 번 우리를 흔든다. 그러면서 이 시에서 단 하나, 동심을 초월하여 시적 자아로 은유하려는 수캐마저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首丘初心수구초심: 여우는 죽을 때 굴이 있던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둔다.]로 읽히면서, 애틋한 미감으로 승화되는 정경을 그려내는 데 일조한다. ‘아하, 그래! 가슴 시린 향수마저도 고향의 맛으로 승화되어 온밤이 꽉 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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