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마음, 청라언덕과 같은
  • 전주일보
  • 승인 2021.12.16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 정 선/수필가
최 정 선/수필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다어느 결혼초대장이겠지 짐작했다.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며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그것이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는 카드인 것을 알았다.

발신인 주소가 없었지만,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독특한 필체 때문이었다. 드물게 활달한 명필이었다- 아 아! 그 친구가 보낸 것이로구나. 벌써 크리스마스에 연말이라니! 나는 그간 세월도 잊고 지냈다.

-세상에! 요즘 같은 때 크리스마스카드라니!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더구나 요즘은 세상이 모두 몹쓸 병마의 깊은 수렁에 빠진 채 넋이 나간 날들이 아닌가. 그가 상점을 찾아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고, 축복의 말을 생각하고, 주소를 찾아 쓰고,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이고그리고 내게 보내온 것이다.

새삼,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연말이 될 놀랍고 고마운 선물이었다나는 그 친구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수 년이 지난 50대에 동창회 모임에서 처음으로 가까이 안부를 들었다. 사범학교 동창 동기생의 수가 전체로 200여 명으로 남과 여 2개반씩, 각반이 겨우 60명 정원이었으니 많지 않은 친구들 가운데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구나 남학생이 아닌가. 내가 유난히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어려웠던 성향이라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그 후, 나는 그가 졸업 후 다른 사범 친구들과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해외 금융기관의 지점에 나가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해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오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해외에 오래 근무하는 동안에도 잊지 않고, 귀국 후에도 지금껏 변함없이 성탄과 연말 축하 카드를 보내왔으니, 그 시간의 길이 장장 30여 년이 넘도록 따뜻한 교분을 쌓으며 걸어온 셈이다.

- 어찌, 내가 그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나 자신에게도 고맙지 않을 것인가.

친구란, 어느 한 사람의 선의와 신뢰만으로는 관계가 오래가기 어렵다. 더구나 사람의 순간순간이란 감정과 감성에 따르게 되고, 그에 따라 변화무쌍한 존재가 아닌가. 친구 사이에 가장 무서운 것은 주어진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에 대하여 자신이 본래 지녔던 선의와 신뢰를 함부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친구를 자신을 위해 쓰는 하나의 그릇이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선현이 경계한 뜻 또한 다른 데 있지 않으리라.

친구라는 관계가 오래도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려면 친구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는 일이 아닐까.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불행한 일이 있다 해도 친구를 믿고 그가 잘 되기를 빌어야 한다. 행여, 그가 나를 비난하거나 나에게 잘못했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그에 대해 내가 처음 지녔던 선의와 신뢰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그와 더 오래도록 친구가 된다 한들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더욱 내게 그런 친구가 많거나 적다 해서 더 기쁘거나 또 무슨 슬퍼할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밤의 적막과 같은내 마음에 그 오랜 친구는 언제나 환한 기쁨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청라언덕과 같은그의 더 나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앞서 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일깨워 온 누군가가 있었으므로 나 또한 따뜻한 마음으로 낮게 노래하며 나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친구는 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컫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평생 산과 바다, 나무와 꽃과 이름 없는 풀과도 아주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평생을 하늘과 해와 달과 별과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과도 세상에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친구 이야기를 하고 보면 하룻낮, 하룻밤도 모자랄 것이다.

내가 요즘 세월을 잊고 그 오랜 친구마저 깜빡 잊고 지낸 것도 끝내 버릴 수 없는 한 친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와 꼭 다정한 친구가 되겠다고 벼르고 벼르는, ‘모습도 아름다운 고약한 전염병친구다.

멀고 먼 생의 한길을 걷다 보면 오다가다 몹쓸 친구도 만나게 되는 것을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무래도 이제는 우리가 먼저 그를 용서하고 어르고 달래어서 참다운 오랜 친구,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가까운 날, 우리 다 같이 그와 그런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