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여행의 맛
  • 전주일보
  • 승인 2021.11.11 15: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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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김 영 숙/수필가
김 영 숙/수필가

 고군산도 섬 나들이를 했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곳이었지만 2016년 선유도로 가는 다리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새만금로를 지나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를 잇는 도로로 편하게 자가용을 타고 갈 수 있다.

집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볍게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신 이후로는 여행다운 여행은 거의 포기 상태였다.

어머니는 주중에는 주간 보호 요양을 받지만, 주말에는 순전히 식구의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말로 집순이가 된 지 근 2년이다. 그러던 차에 나에게 반나절이라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시누이네 식구들이 가족끼리 가는 나들이에 어머니를 모시고 간 덕분이다.

그 반나절,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었다. 놀아본 사람이 잘 놀고 여행해본 사람이 잘 간다는데 일에 묻혀 살던 나는 모처럼 주어진 시간마저 어떤 식으로 슬기롭게 써야 할지 몰라서 허둥대다가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섰다.

그야말로 계획 없이 무작정 나서서 달려간 곳이 고군산도 이다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 장자도를 잇는 다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절경이고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이며, 넓은 모래사장, 그 너머의 또 작은 섬, 물 빠진 바닷길, 오가는 사람들, 그 하나하나가 자릿한 풍경으로 내게 안겼다.

풍경에 취한 듯 어린 듯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걷다가 보니 어느새 바닷바람에 마주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선유도 해수욕장 모래밭에선 맨발로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나 잡아봐라!’ 놀이로 낭만도 챙겨보았다. 장자도 계단 길을 힘겹게 올라간 대장봉에서는 노을 지는 바다로부터 반짝이는 윤슬을 선물 받기도 했다.

흔히 여행을 인생에 비유한다. 어느 시인은 우리는 누구나 여행자라며 인생의 여정은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후 죽음이 끝을 내기 전까지 계속되는 여행이라고 했다. 다만 인생이 여행과 다르다면 인생은 편도 승차권 한 장만 손에 쥐고 떠나는 단 한 번뿐인 여정인데, 여행은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왕복이 가능하다는 차이일 터이다.

여행은 봇짐을 싸고 떠나야 할 아주 긴 여행도 있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떠나는 짧은 여행도 있다. 한번 떠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도 있고 떠났다가도 악천후를 만나 되돌아와야 하는 아쉬운 여행도 있다. 어떤 여행이든 떠나기 전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계획했다고 그대로 다 되지는 않는다.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목적지를 바꾸며 여행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런 게 여행의 묘미이자 인생의 맛이 될 수도 있고 여행길이 고생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내 여행처럼 발 닿는 대로 계획 없이 가다 보니 오길 잘했구나!’ 하는 즉흥 여행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

여행길에는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잔잔한 겨울 바다이거나 호젓한 오솔길의 바람이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가로수이거나,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사람 냄새 나는 시장이거나 맺어진 관계는 내 안에서 또 하나의 상념으로, 또는 자아로 발전한다.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사랑이요, 또 하나는 여행이다. 젊어지기를 원하는가? 될수록 여행을 많이 하라라고 누군가 말했다. 떠나자. 코로나 19로 움츠러들었던 하루하루의 반복된 일상으로부터. 떠날 때는 그동안의 삶의 온갖 추억들은 잠시 내려놓고 가도 좋다. 그래야 여행하면서 그 빈 자리에 다시 채울 수 있고 젊어지는 샘하나쯤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니.

여행의 맛은 젊었을 때의 여행보다 쉰 살이 넘은 지금 여행이 다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발길이 빨라지는 듯하다. 세상사에 묻혀 더불어 살아온 시간은 더없이 느린데 중년의 나이가 되니 덧없이 빠르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가슴에 의미를 남긴다.

어머니는 딸의 가족여행에 동행하며 여든 살의 시간만큼 천천히 느끼며 새로움을 가슴에 담아오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나브로 당신의 기억을 지우고 계셨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두고 가는 것은 없는지, 살면서 놓치는 것은 없는지, 후회할 일을 만드는 건 아닌지, 내 방식대로 여행지에서 나를 자주 챙겼다.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조금씩 삶의 여백을 지우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 여백을 여행이라는 새로운 일상으로 채우며 조금 더 웅숭깊어지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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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새 2021-11-11 18:24:44
잔잔하게 여운을 주는 글이네요 , 여행을 다녀오고싶게 만드네요!

장호빈 2021-11-11 18:55:40
때로는 즉흥적인 여행을 해봐야겠어요.
성격상 어려웠는데 용기가 생기네요:):):)

주민맨 2021-11-13 06:32:23
즉흥 여행 가고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