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 전주일보
  • 승인 2021.10.21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 광 섭/ 수필가
문 광 섭/ 수필가

한가위 연휴가 끝나고 금요일의 시문학 수업을 받고자 집을 나섰다. 그동안 승용차를 이용해 왔으나 사정이 생겨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버스정류장엔 출근하는 사람과 통학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송천동에서 강의실이 자리한 효자동까지 가자면 환승이 편리하여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골라 탑승하며 현금카드를 단말기에 댔다. 그러자 감사합니다.’라는 음성이 나왔다. 그저 !’하는 인식 신호보다 얼마나 좋은가.

 

아버님, 어서 오세요. 가까운 자리에 앉으셔요!”

나는 귀를 의심하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혹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인 듯싶어서였다. 아무도 없었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앞 좌석에 우선 자리를 잡았다. 숨을 돌리며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쯤으로 보이는 곱다란 여성 운전기사였다.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달렸고, 센트럴 파크 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어머님, 어서 오세요. 멀리 가지 마시고 거기 앉으세요. 학생들은 뒤쪽으로 가시고.”를 정류소마다 반복하면서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승객을 편안하게 안내하는 여성 운전기사의 태도가 퍽 마음에 들었다. 시내 중심지까지 가는 20여 분 동안 운전기사를 보며 마음이 훈훈해졌다. 중앙성당 종탑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환승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저절로 기사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이 나왔다.

 

중앙성당 정류장엔 연신 버스가 출발하고 들어와서 다섯 대나 줄지어 늘어섰다. 효자동 홈플러스를 지나는 버스를 찾아 앞자리에 앉았다. 그때, 운전기사가 빨리 올라와요라고 재촉했다. 70대 아주머니가 출발하려던 버스를 세우고 나름 서둘러 오르는데 장보기 짐 때문에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순간, 조금 전 보았던 여성 운전기사와 대비되며 마음이 불편했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안내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차에 오를 때 정류장에 줄지어 서 있던 차량 행렬이 생각나면서 곧 운전기사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출근 시간대라 승객이 많고 바쁜 시간 아닌가.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으니 자칫하면 운행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어 감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니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버스가 동서 관통로 사거리에서 객사 방향으로 우회전하자, 좌측 창문으로 풍년제과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이 근처에서 만났던 친절한 운전기사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6~7년 전쯤 평화동 소재 꽃밭정이 복지관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정류장엘 갔더니, 마침 우리 동네까지 가는 버스가 도착하기에 탑승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차창만 내다보면서 무더운 날씨인데다 한낮이어서 행인들이 별로 없다고 느끼는 가운데 버스는 풍년제과소를 돌아서 정류장에 멈춰 섰다.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탓에 자연히 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80대 중반쯤의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손에 지팡이를 든 채 차에 오르며 허리춤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고 동전을 찾는 게 보였다. 운전기사가

할머니, 돈은 나중에 꺼내시고 먼저 올라오시기나 하세요! 천천히. 왼쪽 쇠 기둥을 꼭 잡으시고 조심히 오르셔요.”

운전기사는 재촉하거나 성화를 부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다칠세라 마치 어머니라도 모시는 듯이 다정하고 자상했다. 70여 평생 그런 운전기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태도에 감동이 밀려왔다. 최소한 3분가량을 기다려 주면서 친절한 언행을 베풀었던 운전기사의 기억, 그 순간을 지금껏 가슴에 간직해 오던 터다. 오늘 다시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 운전기사를 만난 건 행운이지 싶다.

 

코로나19와 더불어 각박해진 현실 속에서도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많은 게 사실이다. 다만 극히 일부 불량한 사람들의 행동이나 포악무도한 행위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리듯이 선량한 다수의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거나 위협하지만,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얼마나 남에게 친절했던가. 나이 먹었다는 핑계로 신세 지고 대우받으려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나도 어디선가 다른 이에게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