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는 한 우리는 시인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는 한 우리는 시인이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10.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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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귀퉁이에 둥지 틀고

붕어가 애절한 소리로

어머니를 부른다

땡그랑 땡그랑 때~ ~

 

불효로 뼈에 묻힌 고통 씻고자

호수를 떠나와 참회하며

온몸을 흔들어 어머니를 부른다

땡그랑 땡그랑 때~ ~

 

대웅전 독경 소리에 욕된 몸 헹구고

뜬눈으로 밤을 수행하면서

가슴에 사무친 어머니를 부른다

땡그랑 땡그랑 때~ ~

 

청아한 목소리로 고요를 걷어내며

골짜기를 메우고 물안개로 오르며

어머니를 부른다

땡그랑 땡그랑 때~ ~

 

-민인기(1948~ . 전북 정읍)풍경소리전문

 

사찰에는 사물四物이 있다.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 법고法鼓가 그것이다. 예불을 드릴 때 이 사물을 울려서 사바세계의 중생을 구제하는 의식을 행한다. 불가에서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중생이라 한다. 고어를 들여다보면 짐승이란 말의 어원이 중생衆生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사람 역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짐승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중생]들이 소중하다. 그런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예불의식에 쓰이는 것이 사물이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여느 사찰에서 보면 범종 아래가 깊이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범종의 웅숭깊은 소리 맛을 살리려는 의도였겠지만 이 웅덩이 덕분인지, 범종소리는 더웅~! 더웅~!’ 지축을 울리며 무겁고 웅혼하게 울린다. 지하[지옥]의 중생들이 위로받을 만한 음향을 울려낸다. 목어는 통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다듬고 속을 비워 만든다. 이 목어[나무통]을 두드리면 둔탁하지만 친근한 소리를 낸다.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 같은 소리 맛을 지녔다. 물고기로 태어난 중생이라면 충분히 감지할 만한 음향이다. 철판에 구름모양을 양각해서 만든 운판소리로 날짐승[중생]들이 악업의 인연에서 벗어나는 불은을 입게 될 것이다. 운판의 소리 맛은 쇳소리가 쟁쟁하여 날카롭고 가볍지만 공중으로 퍼져가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법고가 있다. 나무통에 가죽을 입혀 만든 북이다. 북소리는 가죽을 입은 짐승, 곧 인간을 비롯한 육지의 짐승들을 위한 소리다. 법고소리를 들으며 지상의 중생들이 생로병사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겼다.

풍경風磬은 사찰뿐만 아니라 한옥 지붕의 네 귀퉁이에 달아 매우 자별한 운치를 자아낸다. 사찰 건물이나 한옥 외에도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처마나 출입구나 현관에 풍경을 달아놓고 즐기는 경우도 있다.

풍경소리를 내려면 자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즉 바람이 풍경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풍경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쇳조각일 뿐이다. 바람과 합작하여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자연물을 감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사찰의 사물이 그 자체를 위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생을 위하여 울듯이, 풍경 역시 그 자신을 위해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바람[자연]을 자각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에 만족하는 사물事物이다.

풍경소리를 들으려면 마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음가짐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고 고요해야 비로소 풍경소리가 마음 안에 파동을 일으킨다. 설사 들린다고 할지라도 마음풍경이 고요하지 못하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음향일 뿐이다. 풍경소리가 음향이 아니라 음성[마음소리]로 받아들이려면 역시 고요하고 맑은 시심이어야 한다. 간절한 염원을 지닌 사람은 모두 시인의 귀를 가진다. 이 시의 화자도 그렇다.

시의 화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음향은 듣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듣는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절절한 시심을 지닌 사람, 가슴 가득 간절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들리고 보일 뿐이다.

물속 중생인 붕어가 어머니를 부른다고 해서 다르지 않다. 풍경이 마침 붕어모양을 한 모양이다. 숨 쉬는 생명은 모두 중생이라 하지 않았는가. 제 살던 곳[호수]를 떠난 붕어, 어머니 곁을 떠난 아이는 모두 붕어풍경처럼 울 것이다.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땡그랑 땡그랑 때~ ~!” 울 것이다. 시적 화자의 마음풍경이 보이는 듯, 들리는 듯하다.

실제로 이 시를 쓴 시인은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여의었다고 했다. 그가 쓴 다른 시들에서 사모곡을 여러 편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4연에 걸쳐 어머니를 부른다.” 애절한 소리로, 참회하며, 뜬눈으로 수행하며, 물안개로 오르며, 애타게 어머니를 부른다. 풍경소리뿐이겠는가. 시적 화자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어머니를 찾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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