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 전주일보
  • 승인 2021.09.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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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시계가 비가 온다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자
사내는 노란 우산 아래
빨간 장화를 신고 약속처럼 왔다
비에 젖은 사람들은
저 친구 오늘도 날궂이를 한다고 빗방울처럼 말한다
사내가 마네킹처럼 서서
쇼윈도를 들여다본다
안에서는 머리털 검은 짐승들이 얼굴을 맞대고
무엇인가를 먹어 주고 받아먹고 있었다
거리에는 무심한 얼굴들이 흑백 화면처럼 스쳐가고
뿔처럼 돋은
종교 같은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는
기도를 해야 하는 시간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감 잡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을 앞세우고 세월 따라 여기까지 온 인생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이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느냐고 묻는다. 후회는 후회를 낳을 뿐. 계획대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먼동이 틀 때 까지 자문자답을 하지만 잡히는 것은 없다. 인생은 각자의 몫대로 사는 것이라고 내가 나를 위로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별을 볼일이 없었다고 불평을 해도 귀머거리들뿐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누구 한사람 커피 한잔 사주지 않았다. 호주머니를 툴툴 떨어 쇠주 한 병을 들이 부으면 불타는 것은 빈 가슴이다.

삶은 순수하거나 고맙지 않았다. 저쪽 탁자에 앉은 사내가 운명은 운명이라고 이죽거린다. 반은 내 정신 반은 남의 정신인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이제 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한다는 것은 비굴한 일이다.

좋든 싫든 간에 가야 할 길이라면 당당하게 반듯하게 가야겠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 집으로 돌아가 정신줄이 초롱초롱해지면 빈대떡 한 장 붙여놓고 새끼들의 얼굴을 보면서 담백하게 웃어야겠다.

기름기도 별로 없고, 식감도 좋은 녹두빈대떡이면 좋겠다. 뽕짝 한곡 틀어 놓으면 세월이 말하기를 ‘보슬보슬 나린다 그날처럼 나린다/비오는 날의 세시 종소리도 흐느껴 운다/나무잎이 젖는다 땅도 집도 젖는다/비오는 날의 세시 이 가슴도 젖는다//잊을 길 없는 그대의 미소/사랑은 가고 떠나지 안타까운 그리움/먹구름이 몰리듯 아쉬움만 고이는/비오는 날에 세시 이 마음은 또 운다/비 오는 날의 오후 세시’ 최무룡이 노래하고 김지미가 듣는다.

비오는 날의 오후 3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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