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테니스 경기 가운데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Open 8강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남녀 우승상금 300만 달러, 1회전에서 탈락해도 61,000달러를 준다는 돈 잔치 경기를 관전하며 평소 내가 모르던 사실을 발견했다.
경기에서 득점과 실점을 주고받는 가운데 거의 모든 경기가 상대 선수의 강력한 서브나 빼어난 공격력에 의해 실점하는 점수 보다 본인의 실수로 실점하는 점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대 선수에게 강한 서브를 구사하려다가 오히려 네트에 걸리거나 코트 밖으로 공이 떨어져 실점을 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받아넘기다 보면 상대방의 실수나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터인데 성급하게 강한 공을 보내려다가 되레 실점을 자초하는 일이 허다했다.
한 게임을 이길 때마다 몇십만 달러의 상금이 올라가는 경기이니 욕심을 부릴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자멸을 선택하느니 차분하게 내 점수를 쌓아가는 선수가 게임을 가져가는 걸 보며 그들의 경기가 요즘 우리나라 대선에 나선 사람들이 하는 짓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테니스를 잘 모르는 내 견해일 뿐 선수의 경기를 감히 내가 평할 수준이 아니니 테니스 이야기는 여기서 접겠다.
대선 정국을 보면 양당 후보자들이 테니스 선수들처럼 무리하게 경쟁자들을 공격하다가 되려 본인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상당하다. 자신의 역량이나 인지도, 그리고 진정한 국민의 지지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경쟁에 뛰어든 후 유력후보를 공격해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후보들도 눈에 띈다.
최근의 우리 정치는 과거의 경력이나 개인적인 인기보다 여론이 어떻게 후보자를 인식하는지에 따라 후보자의 비중이 달라지는 여론 정치가 주류를 이룬다. 자신의 능력이나 경륜보다 여론조사에서 얼마나 지지율이 높은지에 따라 입지자의 무게가 결정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한때 막강했던 여론조사 수치에 고무돼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대선에 나서겠다는 선언과 함께 당 대표와 사전 논의도 없이 국민의힘에 점령군처럼 들어가 상좌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12명의 예비후보 의사와 관계없이 경선룰에 역선택 방지 규정을 포함하려는 후보 선출 방식을 바꾸려다가 실패한 일도 있다.
윤 후보는 여론이 자신에게 몰려 있다는 망상 속에 빠져, 자신만만해졌다. 그런 가운데 상식 이하의 철학이나 생각, 공약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지지도가 반 토막 났다.
그의 지지도는 결국 자당의 홍준표 후보에게도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테니스 선수가 강력한 서브를 넣다가 '더블 폴트’로 상대 선수에게 점수를 내주는 결과처럼.
12명의 후보가 난립한 국민의힘 대선 경쟁은 최근 ‘고발 사주’ 문제로 호떡집에 불난 듯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늘은 김웅 의원의 기자회견에서 뭔가 밝혀지리라고 기대했지만, 별달리 확인된 내용이 없이 두루뭉술 넘어간 느낌이다.
늘 윗자리 후보들은 나머지 후보들의 타깃이 되므로 자칫하면 만신창이가 되어 정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공격을 무력화할 능력이 있거나 맞아도 버틸만한 맷집을 지니지 않고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 상황에서 상좌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지난 4일과 5일 진행된 민주당 충청 및 세종시 지역 투표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전체 투표의 절반을 넘기는 득표로 여타 후보를 압도했다.
그동안 부끄러운 수준의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던 이낙연 후보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돌려서 생각하면 이낙연 후보의 공격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된 셈이다.
물론 충청권 한 지역의 결과를 보고 판세를 가늠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그러나 두 후보와 연관이 적은 지역인 점을 생각하면 최종 결과도 별로 달라지지 않으리라고 짐작할 만하다.
상대 선수가 어쩌지 못할 만큼 강력한 공격을 한다는 것이 그만 공이 네트에 걸려 외려 내가 실점하는 경기와 많이 닮아 보이는 민주당 경선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경선에 나선 여타 후보들은 여전히 반전 카드를 생각하고 기회를 만들 계기를 찾는 듯하다.
그러나 시소 놀이에서 한쪽으로 무게가 실려 기울어지면 점점 더 무게가 내려가 다시 평행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이재명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민심도 그쪽으로 더 몰리게 될 것이다. 소위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라는 쏠림 현상이다.
이런 상황을 만회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상대방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해 그로기 상태로 몰아가는 수단뿐이다. 그러나 이미 이재명 후보의 맷집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갖은 음해가 난무하는 길을 헤쳐온 그를 무너뜨릴 치명타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이 할 일은 이 경쟁을 이어가서 멋진 피날레를 만들어 국민의 박수를 얻는 게 최선이다. 여기서 더 치졸한 싸움을 벌이는 짓은 자멸의 길이고 축구의 자살골이다. 내가 못 먹는 감이니 꼬챙이로 찔러버리겠다는 오기(傲氣)는 공멸(共滅)을 부를 뿐이다.
외려 상대방을 추어올리며 멋진 단합을 보이는 자세를 보인다면 안정감 있는 당의 모습에 신뢰가 쌓여서 바라는 대로 정권 재창출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의 민심은 비교적 충성도가 낮다. 사소한 일에, 가벼운 미풍에도 금세 변하는 게 인심이다. 그래서 ‘인심 조석변(人心 朝夕變)’이라는 옛말도 있다. 대선까지는 아직도 173일이나 남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야 양당이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주인인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가 결정된다고 필자는 단언한다. 과반수가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내용도 믿을 게 못 된다. 그저 조사 당시의 응답자 의견일 뿐이다.
주인의 마음을 얻는 정당, 그 정당에서 순리에 따라 후보가 된 자에게 영광이 돌아갈 것이다. 무리한 경쟁으로 화(禍)를 부르는 짓은 자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