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의 思秋期 여인들
클라우드의 思秋期 여인들
  • 전주일보
  • 승인 2021.09.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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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가을이 오고 있는 9.

  전주 효자 사거리에서 평화 사거리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음식점이 있다. 그곳을 지나노라면 십 년의 두 배쯤 지나간 날들의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몇 번을 만나도 싫증이 나지 않고 반갑게 만나던 사람들이었다.

  그땐 그곳에 클라우드라는 찻집이 있었다. 찻집 클라우드에 모인 여인들은 아름다웠다. 그들은 자칭 멋쟁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끼워주었다. 여자같이 아담하게 생겼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이유였다.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오르내리는 언덕길에서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찻집에 앉아서 창 너머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를 바라보면서도 심산유곡에 와 있는 듯 기분을 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인생을 살 만큼 살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었다. 겨우 사십을 넘긴 사람들인데도 흔히 나이 좀 든 사람들이 말하는 십 년만 젊었어도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나이에 십 년 젊어져서 무얼 어떻게 하려고요. 시집이라도 새로 가려고요?”

 “못 갈 것도 없지. 백마 탄 왕자가 손을 내민다면 못 이기는 척 백마에 올라타는 거지 뭐.”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걸핏하면 쌓인 스트레스 발산하는 화풀이보다는 작은 불만 잠재우며 주어진 처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위의 이웃들도 돌아보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성숙한 여인들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요? 의미 있는 날 의미 있게 지내지도 못하고 그냥 밥만 먹고 살아도 되느냐고요?”

  이게 무슨 소린가. 아무 탈 없이 출퇴근 잘하더니 갑자기 철학자가 되었나?

  생일에 밥보다는 꽃 한 송이쯤은 챙기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배 선생은 이제 막 사십 대의 대열에 들어선 사람이었다. 무관심이 점잔이요, 잔정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체통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우리네 남자들을 향한 경종이었다. 문득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도 했다.

 “잠깐, 우리 가다가 클라우드 언덕길에서 솜사탕 하나씩 사 먹고 가자. 안 할래?”

 “솜사탕을요?”

 “뭐 어때? 애들만 먹는 것인 줄 알아? 너희들도 한번 먹어 봐라. 애들만큼 젊어질 것이다.”

  10년도 더 젊게 봐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백 선생은 그러기에 만년 소녀였다.

  언제나 바쁜 그이기에 차 한잔하자고 하면 바빠서 라고 해야 할 사람인데도 그 짧은 시간, 자투리 시간이라도 여유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러기에 그렇게 젊어 보이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가 보다.

 “나 이제 思秋期인가 봐. 혼자만 있고 싶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 혼자만 여행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

 “思秋期? 그런 말도 있나요? 思春期가 피어나는 시절이니 사추기는 시드는 시절인가요?”

 “아니야. 시드는 시절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시절을 말하는 거야, 어때? 나 다시 피어나도 괜찮겠지?”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인데도 갑자기 봄이 오고 있는 것은 웬일인가. 이곳 클라우드 언덕에 사시사철 봄을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퇴근길 늘 다니던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 게 어때요? 제가 눈여겨 보아둔 괜찮은 찻집이 있어요.”

  처음부터 젊게만 살아왔을 것 같은 이 선생은 패션모델이라고도 하고 소문 안 난 가수라고도 했다.

  학생들이 다 돌아가고 난 오후, 어디에선가 은은한 음악이 들려 소리를 따라가 보면 이 선생 교실에 이른단다. 그가 기분을 내어 한 곡조 뽑으면 팡파르는 따 놓은 당상이란다.

  하늘 높아지는 9월 초순의 길목에서 여유 좀 부리면서 살아가자고 짬을 내는 클라우드의 여인들은 자칭 삶의 여유를 찾겠다고 큰소리 탕탕 치지만 그들의 눈길은 자꾸만 시계가 걸려 있는 벽 쪽으로 향한다. 아무리 늦어도 한 시간은 넘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족하지 뭐. 아무리 큰소리쳐도 우린 가정주부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 해 넘어가기 전에는 집에 가야 하려나 봐.”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러운 여인들. 그들이 훌훌 털고 일어나서 걸어 나온 클라우드 찻집 마당에 서 있는 벚나무 잎 가운데 노란 잎이 보였다. 벌써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을을 타는 클라우드 여인들의 思秋期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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